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마감하는 마음 (2024.12.22.)

― 부산 〈책과 아이들〉



  한 해를 마감하는 때를 ‘섣달 그믐’이라 합니다. 새롭게 한 해를 여는 날을 ‘설날’이라 합니다. 우리 겨레는 달종이가 아닌 날씨를 살피고 하늘빛과 바다빛과 들빛과 숲빛을 고루 헤아리면서 ‘섣달·설날’이란 두 이름을 붙입니다.


  끝날과 첫날을 잇는 낱말이 ‘서’입니다. ‘서다’ 하나를 ‘멈춰서다’로 새기면서 ‘섣달’로 붙인다면, ‘서다’ 둘을 ‘일어서다’로 새기면서 ‘설날’로 붙입니다. 까마득히 오랜 나날 수수께끼로 이은 우리 말밑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빛을 배움터에서 슬기롭게 가르치는 길잡이는 아직 없어 보입니다.


  차근차근 매듭을 짓고 마감하는 나날입니다. 부산으로 ‘이오덕 읽기 모임’을 꾸리러 가는 길에도 여러모로 마감글을 추스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며 이웃하고 으레 “산타는 바로 여러분 스스로예요. 내가 나한테 주는 빛을 ‘선물’이라고 말한답니다“ 하고 속삭입니다. 우리는 서로 ‘빛’을 주고받습니다. ‘덩이’를 주고받지 않아요. 덩이나 돈을 주고받더라도, ‘이 덩이에 빛을 담아’서 주고받게 마련이고, 빛으로 마주하는 사이라서 오래오래 반갑습니다.


  ‘반갑다’라는 낱말은 ‘밝다’를 나타내요. 아무나 안 반갑지요. 밝게 웃고 노래하고 이야기할 사이일 때에만 반갑습니다. 반갑게 여밀 끝날과 새날을 그리면서 짐을 꾸려서 길을 나섭니다. 가는 길도 오는 길도 매한가지입니다. 시골마을을 뜸하게 지나가는 버스를 먼저 타고, 읍내에서 이웃고을로 넘어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부산으로 가로지르는 버스를 탑니다. 부산에서는 버스나 전철로 마을책집으로 또 나아가지요. 이러구러 길에서 늘 일고여덟 시간을 가볍게 보냅니다.


  아침에 겨울빛을 듬뿍 누리면서 〈책과 아이들〉에서 ‘바보눈’ 여덟걸음을 잇습니다. 처음에는 겨울빛이더니 이내 겨울볕으로 포근포근합니다. 까치가 동백꽃을 톡톡 쪼아먹는 모습을 다같이 지켜보면서 ‘힘들면서 즐거운’이라는 글이름으로 저마다 쪽글을 씁니다. ‘힘들다 = 힘을 들이다’라는 뜻입니다. 힘을 들이기에 나쁘다는 결이 아닌, 그저 스스로 새롭게 지으려고 온몸을 다하여 힘을 들인다는 길이고, 온몸에 이어 온마음을 나란히 들이기에 늘 즐겁습니다.


  책은 눈으로도 읽지만, 먼저 마음으로 읽습니다. 다음으로 손길로 읽고, 언제나 우리 숨결에 흐르는 사람으로 늘 읽어요. 첫자락에 매듭을 짓는 읽기와 쓰기가 있고, 끝자락에 비로소 매듭을 보는 일거리가 있어요. 흐르는 마음에 별빛을 한 줄기 얹으면서 가다듬습니다. 오가는 눈빛에 이야기를 사르르 놓으면서 매만집니다. 오늘도 모레도 어제도 하나로 흐르면서 마주하는 발걸음입니다.


ㅅㄴㄹ


《인형의 집》(루머 고든 글, 조안나 자미에슨· 캐롤 바커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8.4.10.첫/2020.12.7.16벌)

《빛을 가진 아이들》(이가을, 대원사, 1997.1.5.)

《라퐁텐 우화집》(라퐁텐/이가을 엮음, 대원사, 1990.6.5.첫/1999.5.25.7벌)

《열두 살의 전설》(고토 류지/박종진 옮김, 우리교육, 2003.11.30.첫/2015.7.20.6벌)

#後藤?二 #鈴木びんこ 

#後藤龍二 #12歲たちの傳說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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