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추잠자리
창가로 밝은 빛이 스며든다. 늦었나 싶으면서도 몸이 고단하여 조금 더 눕는다. 그러다가 이제는 더 어기적거리면 안 되겠구나 싶어서 일어나서 시계를 본다. 여덟 시 반. 히유. 그다지 늦은 편은 아니구나. 열 시가 넘은 줄 알았는데.
기지개를 켜고 찬물 한 잔 마신다. 씻는방에 들어가서 낯과 손을 씻은 다음, 어제 담가 놓은 빨래를 세 가지만 한다. 닷새 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다닌 탓에 몸이 많이 찌뿌둥하다. 잠도 모자라다. 다음 한 주는 집에서 멀리 나가는 일을 줄여야겠다. 밀린 일도 많고.
빨래 두 가지는 집안에 넌다. 하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서 빨랫줄에 건다. 잠깐 해바라기를 한다. 아침햇살은 늘 따뜻하고 반갑다. 담벽에 기대어 이웃집 지붕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추잠자리 세 마리가 잰 날갯짓을 하며 내 옆쪽 담벽에 앉는다. 잠자리가 나오는 철인가. 지난달에도 잠자리 한 마리 보았는데. 가만히 잠자리를 들여다보다가 사진기를 꺼내 와 몇 장 찍는다. ‘좀더 가까이’를 생각하며 살살 다가서니 호롱 하고 날아간다. 먼곳 사물을 잡아당겨 찍는 렌즈가 없으니 아쉽다. 도서관으로 내려와 창문을 하나씩 열고 물을 반 잔 마시고 밀린 설거지를 한다. 조금 있으니 배가 살살 아파서 책 한 권 들고 살림집으로 올라가 뒷간에 들어간다. 책을 펴고 똥을 눈다. 개운하게 볼일을 마치고 나온다. 마당 담벽을 슬그머니 바라본다. 고추잠자리는 한 마리만 보인다. (4340.10.5.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