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2.16. 앉기보다는
오늘 고흥군 과역초등학교로 왔다. 아침부터 낮 사이에 넉 자락으로 이야기꽃을 편다. 글을 쓰는 길이란 무엇인가 하는 수수께끼를 가만히 짚으면서, 누구나 노래님이고 저마다 말씨를 마음밭에 심어서 말꽃을 피운다는 줄거리를 풀어낸다. 열 살 어린이한테는 ‘별’이라는 낱말로, 열한 살 어린이한테는 ‘눈’이라는 낱말로 하나둘 들려준다.
과역초 앞마당에는 멀구슬나무가 있더라. 열 살 어린이는 나무이름을 모르고 열한 살 어린이는 다 안다. 다만 이름을 알되 쓰임새랑 이름뜻은 모른다.
모르면 모르는 줄 받아들이면서 배운다. 모르는 줄 안 받아들이면 누가 찬찬히 짚어 주어도 언제까지나 그저 모르는 채 산다. 모른다고 대수롭지 않되, 새길을 가려는 배움씨앗을 심지 않으면, 이러한 삶은 굴레이자 쳇바퀴이다.
“난 몰라요!”는 알을 깨려는 첫발이다. “난 모르니 배울래요!”는 살림을 짓는 두발이다. 첫발로 그치면 다시 수렁이고, 바야흐로 잇는 두발부터 모든 하루가 노래로 피어난다. 이리하여 노래(시)란 말만들기나 말꾸미기일 수 없다. 노래란 삶노래 너머 살림노래에 사랑노래이고 숲노래이자 사람노래이다.
아이어른이 함께 노래님으로 서며 만나는 하루를 그린다. 너랑 나는 말동무이고 노래이웃이다. 나랑 너는 놀이지기이자 사랑님이다. 하루 내내 서서 이야기한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버스를 타며 비로소 자리에 앉는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