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2.12.

숨은책 972


《편집자란 무엇인가》

 도로시 카민즈 엮음

 김성재 옮김

 일지사

 1993.1.20.



  이 길도 저 길도 아니라고 여기면서 새롭게 그 길을 찾으려고 할 적마다 벼랑에 서는구나 싶었습니다만, 벼랑끝은 죽음이 아니더군요. 끝에 서기에 새로 건너뛸 만합니다. 벼랑끝에 섰으니 뒤돌아서서 예전 자리로 갈 수 있습니다만, 뒤돌아서더라도 다른 마을로 떠날 수 있어요. 그리고 벼랑끝에서 껑충 뛰어내려서 바다를 갈라 다른 뭍으로 찾아갈 만하지요. 끝없어 보이는 바다를 어떻게 가르느냐 하고 지레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끝은 다 안 보여요. 그저 길을 갈 뿐입니다. 1999년에 책마을 일꾼으로 삶자리를 바꿀 무렵, 자주 만나던 책동무가 불쑥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건네었습니다. “출판사 입사를 축하하는 선물이야. 잘 읽어 봐.” 하더군요. ‘삭스 카민즈’라는 분이 책마을 일꾼으로 보낸 발자국을 이녁 곁님이 갈무리한 꾸러미입니다. 엮음이(편집자)란 늘 첫 읽음이(독자)일 뿐 아니라, 글꾼한테 싫은 말과 좋은 말을 스스럼없이 들려줄 길잡이에 동무에 스승이기까지 합니다. 엮음이가 글꾼한테 싫은 말을 안 하면 글꾼은 제멋대로 가고 말아요. 엮음이가 이따금 좋은 말을 보태어야 글꾼은 수렁을 헤치고 나올 기운을 차리지요. 엮음이는 글꾼을 감싸거나 지키는 몫이 아닙니다. 엮음이는 펴냄터를 먹여살리는 밥솥이 아닙니다. 엮음이는 먼저 읽고 새기고 배우면서 동무인 글꾼하고 오래오래 마음지기로 함께 일하는 사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어떤 엮음이가 있을까요? 글꾼한테 따갑게 싫은 말을 꾸준히 들려주면서 바로잡거나 이끄는가요? 축 처진 글꾼을 부드러이 토닥이고 달래면서 오래오래 빛나도록 어깨동무를 하는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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