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11.18. 어린이부터 읽는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동화 쓰는 법》을 읽었다. 어린이가 읽으라고 쓴 글은 아니로구나 싶다. 어린이부터 읽을 글을 쓴다는 분이라면 여느 때에도 어린이 곁에 서는 눈망울로 이야기할 적에 빛난다. 어린이 앞에서만 다르게 말한다면, 말도 글도 매무새도 얼굴도 마음도 남들 보기좋게 꾸민다는 뜻이다. 꾸미기는 안 나쁘되, 우리나라 배움터에서 시킨 꾸미기란, 나를 나로서 나답게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길하고 한참 멀다. 꾸미는 사람은 일구지 앓고. 가꾸지 않더라. 꾸미느라 바빠서 속빛이나 넋이 아니라 얼굴과 몸짓과 몸매를 쳐다보는 길로 달려가더라.
어린이책을 어린이가 더러 쓰지만 거의 다 어른이 쓴다. 다만 ‘어른’이 쓸 글이다. 나이만 먹은 사람이 아닌, 철들어서 슬기를 밝히는 하루를 스스로 지으며 살림길을 노래하는 ‘어른’이 쓸 글이 어린이책이요 어린이문학이다. 온누리 숱한 책 가운데 바로 아이들을 헤아리면서 사랑씨앗을 심고 나누고 가꾸고 나누고 노래하는 이야기를 담는 어린이책이다. 왜 어린이책을 어린이부터 읽으라고 하는가? 바로 어린이부터 마음밥으로 삼고, 어린이 곁에서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돌보는 어른스러운 어른이 함께 읽으며 생각씨앗을 지피는 글꽃이다.
‘어린이부터’라는 대목을 찬찬히 읽을 수 있다면 누구나 동화도 동시도 쓸 수 있고, 그냥 모든 글과 노래를 다 쓸 수 있다. ‘어린이부터’를 살핀다면, 나라지기뿐 아니라 마을지기를 아무나 안 뽑는다. 우리는 어린이를 굳이 가시내랑 머스마로 안 가른다. 어른이라고 말할 적에도 가시내랑 머스마로 쪼개지 않는다. 어린이나 어른이라는 이름은 그저 사람으로서 사랑인 빛을 가리킨다. 이 얼거리와 삶과 숲을 읽을 수 있으면, 집밥옷을 어떻게 짓고 나누고 누리는 보금자리를 일구고 가꾸면서 즐거울는지 저마다 스스로 알아볼 수 있다.
‘동화’나 ‘동시’라는 낱말은 일본한자말이다. 일본한자말이기에 안 써야 하지는 않고, 일본한자말인 줄 알아야 할 뿐이며, 이웃나라 일본어른이 왜 어떻게 일본어린이를 사랑하려고 이런 낱말을 새로지었는지 스스로 읽어내고 알아내면서 우리 나름대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말을 지을 줄 알면 된다. ‘동화쓰기’란 ‘새로쓰기’이다. 이야기를 새롭게 쓰고, 꿈길을 새롭게 쓰고, 사랑살림을 새롭게 쓴다.
마음을 담기에 말이니, 사랑을 말씨앗으로 엮기에 ‘쓰기’이다. 그러니까 제발 좀 그만 꾸미자. 아이들이 꿈꾸기 아닌 꾸미기를 하기를 바라는가? 꾸며쓰기는 그만두자. 자료조사도 하지 말자. 스스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하면 된다. ‘창작’을 멈추자. 이제는 우리 손발로 짓자.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동화를 쓸 수 있다”는 ‘동화작법’은 모두 걷어치우자.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말자. 말하지도 듣지도 말자. 이 삶이 무엇인지 읽고 이야기하자. 이 살림을 어떻게 가꾸고 지으면서 서로 사랑으로 나아갈 적에 함께 빛나고 아름다운지 말로 밝히고 남기자. 온누리 어디에서나 숲을 품으면서 숲집을 일구는 하루를 살아가다가 문득 글도 나란히 쓰자.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