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1.27.
숨은책 764
《正音文庫 36 周時經傳》
김세한 글
정음사
1974.9.30.
10월 9일을 지켜보면, ‘한글날’에 세종 임금만 기립니다만, 세종 임금이 지은 글씨는 ‘훈민정음’인걸요. 온나라(조선팔도)에서 모인 벼슬아치가 쓰는 말(중국말)이 모두 사투리라 알아들을 수 없고, 중국을 섬기려면 “하나인 소리로 중국말을 해야 했”기에, 중국말과 한자를 또박또박 “하나(서울말)인 소리”로 묶으려고 마련한 틀이라고 할 만 훈민정음이었습니다. 위아래(신분·계급)가 무시무시한 나라(봉건주의)에서는 ‘말(언어)과 자(도량형)’를 임금이 바꿉니다. 조선 내내 벼슬아치 아닌 여느 사람들은 책은커녕 글을 몰랐고, 글을 기웃거리다가는 끌려가서 볼기를 맞거나 목숨을 앗겼습니다. 훈민정음은 벼슬아치(권력자)한테만 이바지하는 글이었어요. 뭇사람(백성)은 엄두조차 못 내었어요. 이웃나라 일본이 조선으로 쳐들어오며 위아래가 흔들릴 즈음, 우리나라도 ‘새길(개화기)’을 뒤늦게 열고, 이때 주시경 님은 우리 말넋삶에 눈을 뜨고서 ‘우리말을 우리글에 담는 길’을 혼자 익히면서 ‘한글’이란 이름을 짓고, 우리말을 배우고 나누는 모임을 열어요. 《正音文庫 36 周時經傳》은 자꾸 잊히는 주시경 님 삶자취하고 마음결을 들려줍니다. 우리는 오롯이 한글로 가로쓰기로 편 〈독립신문〉도 주시경 님이 엮은 줄 모르기 일쑤입니다.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고 깨달은 얼인데, 김세한 님이 쓴 이 책마저 ‘주시경 이야기’ 아닌 ‘周時經傳’이에요. 우리는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글나래를 누린 지 기껏 온해(100년)조차 안 됩니다만, 나래길도 나래꽃도 나래글도 곰곰이 바라보거나 품는 살림살이하고는 꽤 멀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하늘빛을 담고 한마음으로 모이면서 함함하게 함께 나누고 누릴 글인 한글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한말꽃을 피울 이웃님이 천천히 늘어나리라 생각합니다. 한말이란, 한사랑으로 가는 어깨동무입니다. 한글이란, 푸른별을 한별로 가꾸고 돌보려는 손길을 모으는 이야기씨앗입니다.
ㅅㄴㄹ
선생의 청빈한 생활을 잘 알고 동정하는 영남의 어느 유지로부터 받은 내수동의 집은, 주시경 선생이 사신 집이었기 때문에 이 집에 대한 뜻있는 이들의 아끼는 마음과 함께 길이 보존하여 기념해야 할 집이었다. 그러나 선생이 서거하신 뒤 그 미망인 김씨와 어린 한메는 살림에 쪼들려 육당 최남선 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집을 팔지 않을 수 없었으니, (165쪽)
선생은 가족 생활에서도 민주주의를 가르쳤다. 남녀 간에 층하를 두지 않고 생선국을 끓이거나 굽게 되면 뼈와 살을 나눠서 똑같이 먹도록 하고, 어른이라고 해서, 또 아들이라고 해서 살코기를 더 주고, 여자라고 덜 주는 것이 아니고 꼭 공평하게 주도록 하였다. (19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