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1.27.

숨은책읽기 991


《무기가 되는 글자와 말》

 다카노 마사오 글

 편집부 옮김

 사람생각

 2001.10.29.



  사람하고 사람으로 만나면 서로 새롭고 사랑스럽습니다. ‘사람’이 아닌 ‘나라(국가·정부)’라는 허울을 씌우면 그만 이웃도 동무도 아닌 남으로 등지기 쉽더군요. 2001년이 저물 즈음 《무기가 되는 글자와 말》이라는 책을 처음 만나며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 야간중학운동의 투사 다카노 마사오의 삶과 희망”이라는 작은이름을 한참 곱씹었습니다. 어버이나라는 일본이되, ‘일본밖’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카노 마사오 님은 일본이 싸움판에서 무너지고 난 뒤에라야 비로소 ‘어버이나라’로 들어왔다지요. 이녁은 ‘만주거지’ 같은 소리를 으레 들었다고 해요. 이런 소리는 우리나라 권정생 님도 한참 들었습니다.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글을 남긴 권정생 님인데, 이녁 어버이는 이 나라에서 도무지 밥벌이를 할 길이 없어서 일본으로 건너가서 겨우 살림을 이었고, 1945년을 맞이한 뒤에 비로소 이 땅으로 돌아왔지만 ‘일본거지’ 소리를 들었다지요. 나라가 팽개쳐서 가시밭을 걸어간 사람들을 포근하게 품지 않은 지난날 슬픈 자취입니다. 어버이나라인 일본에서 거지 소리를 들으며 손가락질받고 고단하던 다카노 마사오 님인데, 넝마주이 할배가 이녁을 도와서 목숨을 건졌고, 넝마주이 할배는 어버이나라로 못 돌아간 채 일본 길바닥에서 쓸쓸하게 죽어야 했답니다. 다카노 마사오 님은 “내 목숨을 살려 준 저분은 누구일까? 저분은 왜 어버이나라에 못 돌아가고서 이곳에서 죽는가?” 하고 울다가, 넝마주이 할아버지가 쓰던 말인 ‘한말(한국말)’을 배우기로 했고, 일본에서 가난하고 못 배워 따돌림과 찬밥으로 내몰린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야간중학교’를 세우는 일에 몸을 바칩니다. 이 야간중학교에는 ‘재일조선 어머니’가 꽤 많이 다니면서 글씨를 처음 익혔다고도 합니다. 2002년 9월 7일, 서울 인사동 한켠에 이분이 길바닥에 책을 펼쳐놓고서 팔았습니다. 저는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고맙습니다” 하고 절을 했더니 성큼 저를 폭 안으면서 나란히 “고맙습니다” 하고 웃으시더군요.


#高野雅夫

https://www.huffingtonpost.jp/entry/masao-takano_jp_5c5a8daee4b074bfeb160cf2


ㅅㄴㄹ


나는 이 새로운 ‘무기(글씨)’를 가지고 인권의 21세기를 살아가고 싶다. 빼앗긴 본명을 야간중학에서 되찾은 재일조선인 어머니·할머니들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 야간중학의 존재가 민족차별과 교육의 전후 보상이라고 외치는 어머니·할머니들과 함께 모든 한계에 도전하고 싶다. (머리말/6쪽)


할아버지는 자신이 조선사람이라는 것만 알려줄 뿐, 내가 이름을 몇 번이고 물어봐도 “글쎄” 하면서 작업장에서 묵묵히 신문지, 종이 박스, 깡통, 빈병 등속을 분류해 나갔다. (36쪽)


법률에는 규정돼 있지 않은 야간중학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헌법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법률들로부터 배제당하고 무시당해온 내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싸움이며 최대의 복수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115쪽)


얼굴이 없는 글자와 말은 생명이 없다. 생명이 없는 글자와 말은 ‘무기’가 될 수 없다. (225쪽)


살아남은 강자의 논리로 쓰여진 작위의 역사가 현재와 같은 말로를 결과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25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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