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1.23.

숨은책읽기 998


《왜 사느냐고 묻거든》

 김동길 글

 동천사

 1987.2.15.



  김동길 씨가 한창 이곳저곳에 얼굴을 내밀 뿐 아니라, 여기저기에 갖은 글을 잔뜩 쓸 적에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말만 그럴듯하다고 느꼈어요. 어머니가 보는 꾸러미(여성잡지)에도, 아버지가 펴는 새뜸(일간신문)에도 이분 이름이 끝없이 나왔습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듯하기에 붓을 쉬잖고 휘두른 셈인데, 딱히 갈피를 잡는 이야기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1987년에 나온 《왜 사느냐고 묻거든》을 펴면 “못생긴 아줌마와 못생긴 딸”을 깎아내리는 글을 꽤 길게 적습니다. 김동길 씨는 이 비슷한 글을 꾸준히 썼어요. 그래서 이이가 나중에 정주영 씨랑 손을 잡고서 벼슬자리를 거머쥘 적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럴만한 매무새와 삶이자 길을 보여준 글이었거든요.


ㅅㄴㄹ


1982년 10월 14일 오전 11시 … 나는 목포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온종일 전라도를 흠뻑 즐길 수 있게 되었읍니다 … 얼마 후에 내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못생긴 젊은 여자가 못생긴 어린 딸을 데리고 탔읍니다. 그 여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먹기를 시작했는데, 그의 손과 입은 쉴 줄을 몰랐읍니다. 삶은 밤을 두서너 되는 들고 차에 올랐었나 봅니다. 두툼한 입술이 어떤 얼굴에는 무게를 주고 믿음성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 여자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가 못했습니다 … 네안데르탈인이 혹시 이 여성의 생김새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읍니다. 그 딸도 살결이 검은 데다 기생충이라도 있는지 납작한 얼굴이 유난히 노랗고 빈약한데 숱도 많지 않은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흐르고 있었읍니다. 아무리 어린이를 사랑하는 소파 방정환이라도 이 아이를 천사에 비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읍니다.그 엄마는 삶은 밤을 줄곧 입에 물고 쪼개서는 버드러진 윗니로 후벼파서 파먹고 또 파먹는데 잠깐 사이에 그 여자의 주변이 온통 밤껍질로 쌓였읍니다. 뱉고 먹고, 먹고 뱉고 하는 가운데 어린 딸마저 합세해 어지럽히니 그 광경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 어떻게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나 생각하니 걱정도 되었읍니다. (100, 101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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