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 토마토>에도 함께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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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16


여름이 지나가려는 길목에 꾀꼬리 노래를 듣는다. 마당하고 뒤꼍에서 자라는 나무가 우람하게 우거지니, 뭇새가 날마다 갈마들면서 내려앉는데, 어제오늘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맑고 밝은 노래에 더위를 훅 날린다. 꾀꼬리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 ‘꾀꼴’이라는 소리가 깃든다. 매미한테는 ‘미얌’이나 ‘매’ 소리가 깃든다. 개미나 거미는 ‘검다’라는 낱말을 밑동으로 붙인 이름이다. 여름 막바지에 반딧불이가 냇가를 밝히는데, 반디가 밝히는 빛으로 글 한 줄 읽을 수 있을까?



작은숲

큰사람이 있고 작은사람이 있다. 큰고을이 있고 작은고을이 있다. 큰바람이 불고 작은바람이 분다. 큰일을 치르고 작은일을 맞이한다. 크기로 보면, 큰나무 곁에 작은나무가 있고, 작은꽃 곁에 큰꽃이 있다. 나라도 마을도 크고작다. 크기에 더 좋지 않고, 작기에 더 나쁘지 않다. 그저 크기가 다르면서 어우러지는 숨빛이다. 우리는 저마다 ‘작은숲’이리라. 작은숲으로 만나고 손을 잡는 사이에 아름숲을 이루고 사랑숲을 펼치리라.


작은숲 (작다 + ㄴ + 숲) : 1. 키가 작은 나무로 이룬 숲. 나무가 많지 않거나 넓지 않거나 크지 않은 숲. 빽빽한 서울이나 큰고장 한켠에 풀꽃과 나무가 자라도록 마련해서 작게 꾸민 숲이나 쉼터. (= 작은나무숲·마을숲. ← 관목림, 공원公園, 인공림人工林, 공용림供用林, 근린공원, 동네공원) 2. 힘·목소리·이름·돈·자리가 낮거나 작거나 적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한복판이나 큰곳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바깥·구석·기슭·시골에서 스스로 살림을 짓는 길을 밝히면서 나아가거나 살아가는 사람이나 무리를 가리키는 말. (= 작은이·여린이·꼬마. ← 소수小數, 소수자, 소수파, 소수의견, 소수정예, 소수민족, 마이너minor, 마이너리티minority, 단신短身, 소인小人, 약자弱者, 언더독, 미물微物, 미니멀리스트, 소시민, 프티부르주아, 시민, 비주류, 하층, 하층민, 기초수급자, 영세零細, 영세민, 영세업자) 3. 곁에 놓거나 두면서 함께 놀고 어울리는 동무로 삼는 숨결. 사람·짐승·새·풀꽃나무·돌처럼 여러 모습으로 짓거나 꾸민다. (= 작은이·귀염이·꼬마. ← 인형)



비바라기

우리말 ‘비나리’는 “비는 일”을 가리킨다. 돈이나 밥을 빌기도 있지만, 무엇을 바라는 마음으로 빌기도 한다. ‘샤머니즘·무속’도 ‘제사·고사·기원·염원’도 ‘비나리’이다. 비가 오기를 바라며 지내던 ‘비바라기’도 ‘비나리’였다고 여길 만하다. 비는 날개이자 나리꽃 같은 마음인 ‘비나리’라면, 수수하게 비를 바라고 바라보는 마음을 담은 ‘비바라기’를 곁에 살며시 놓아 본다.


비바라기 (비 + 바라다 + -기) : 비를 바라는 마음·일·몸짓·자리. 비를 바라거나 바라보는 사람. 비가 안 내려서 날이 가물 적에 비가 오기를 바라면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비는 자리. (← 기우제)



반디눈빛

옮김(번역)은 거의 ‘새말짓기’라고 할 만하다. 우리말에 있는 낱말이라면 ‘옮김 : 이웃말을 우리말로 맞추기’이지만, 우리말에 없는 낱말이라면 ‘옮김 : 우리 나름대로 풀어서 새로짓기’이다. 반딧불하고 눈송이에 기대어 책을 읽는다는 중국말 ‘형설지공’은 ‘반디 + 눈 + 빛’으로 엮어 새말을 지어야 비로소 옮길 만하다. 밤낮으로 땀흘린다는 뜻을 담으려면 ‘밤낮 + 땀 + 빛’으로 새말을 지을 수 있다.


반디눈빛 : 반딧불하고 눈송이가 베푸는 빛. 가난한 옛사람이 여름에는 반딧불빛에 비추고, 겨울에는 눈빛에 비추어 글을 읽으며 밤낮으로 애썼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말. 아무리 힘들거나 고단한 살림이더라도 스스로 바지런히 살아가면서 배우려는 매무새일 적에는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말. (반디눈빛·밤낮빛·밤낮땀빛 ← 형설지공螢雪之功)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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