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굼 낮은산 작은숲 11
박기범 지음, 오승민 그림 / 낮은산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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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어린이책 / 맑은책시렁 2024.11.4.

맑은책시렁 335 또래 사이에서 조금 굼뜬 아이는


《낙타굼》

 박기범 글

 오승민 그림

 낮은산

 2008.4.10.



  요사이는 흔히 쓰지만 ‘청소년’은 처음부터 있지 않던 말입니다. 일본이 이 나라를 집어삼키면서 세운 배움틀(교육과정)에 아이들을 맞추어 넣을 무렵부터 생긴 낱말입니다. 예전에는 이른맺이(조혼)가 있었는데, 철드는 즈음에 짝을 맺던 살림길입니다. ‘아이’라는 이름에서 ‘어른’으로 넘어서는 즈음이 ‘철드는 때’입니다. 나이는 적더라도 철이 들기에 ‘어른스럽다’라 하고, 나이는 많으나 철이 안 들기에 ‘아이같다’고 여깁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바야흐로 철이 들락 말락”하는 무렵을 푸른날(청소년기)이라고 할 만합니다.


  《낙타굼》에는 아직 철들지 않은 채 뒤엉키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철이 드는 마음이라면 동무를 가볍게 여기거나 놀리는 일이란 없습니다. 철이 안 들기에 동무를 가벼이 밀치거나 놀립니다. 주먹을 휘두르거나 무리지어서 괴롭히는 모든 짓은 철없는 마음으로 바보스레 일삼는 수렁입니다.


  어버이가 물려준 이름은 ‘구름’인데, 한또래는 자꾸 어느 아이한테 ‘굼’으로 뭉뚱그려서 부릅니다. 어느 아이는 조용조용 살피고 생각하면서 움직일 뿐이지만, 굼뜨거나 굼벵이 같다면서 ‘굼’으로 뭉뚱그려 부르고, 이 앞에 ‘낙타’라는 이름까지 끌어들입니다.


  그런데 온누리 어떤 이름도 얕보거나 깔보는 뜻이 없습니다. ‘굼벵이’라는 이름은, 매미로 깨어나기 앞서 일곱 해나 열일곱 해를 곰곰이(굼굼이) 나무뿌리 곁에서 꿈을 그리는 결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낱말책에는 따돌림말로 잘못 다루는 ‘벙어리’는 벙긋·봉긋·방긋하고 맞물리고 방글·벙글·빙글로 이어서 방그레·벙그레·빙그레처럼 소리없이 부드러운 웃음짓을 나타내는 낱말이요, ‘봉오리·꽃봉오리’처럼 소리없이 가만히 피어나는 꽃송이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어떤 이름으로 누구를 괴롭히거나 따돌릴 적에는 ‘그 이름’이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나쁘게 깎거나 갉는 마음’이 깃들 뿐입니다.


  그렇다면 《낙타굼》에 나오는 아이는 한또래가 놀림삼아서 부르는 ‘낙타굼’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이는 스스로 어찌 받아들이면서 견디거나 지내거나 넘어설 수 있을까요.


  배움터 모둠에는 나이가 같은 아이를 한자리에 몰아놓습니다. 이 아이들 가운데 어느 아이는 또래보다 일찍 깨닫거나 움직입니다. 어느 아이는 또래보다 천천히 깨닫거나 느긋이 움직입니다. 모든 아이는 다르고, 모든 어른도 다릅니다. 어느 아이는 말을 조잘조잘 길게 잘 할 테고, 어느 아이는 한 마디조차 더듬더듬하면서 짤막하게 한두 마디 섞기도 버겁습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아이는 혼자 생각에 잠깁니다. 또래보다 한참 뒤에 서서 가만히 생각을 그립니다. 낙타란 어떤 짐승이고 어떤 삶일는지 하나도 모르는데, 문득 낙타는 어떻게 하루를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던 어느 날 꿈에서 낙타를 만난다지요. 아이도 어느새 낙타로 몸이 바뀐 채 드넓은 모래밭에서 또래 낙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때 아이는 다른 또래하고는 그야말로 다른 삶길을 듣고 보고 배웁니다. 낙타는 그저 모래밭에서 스스로 길을 찾고 읽고 살아갈 뿐입니다. 들에서 달리는 말은 들판에 맞는 몸이라면, 낙타는 모래밭에 맞는 몸입니다. 가만히 보면 ‘모래말’인 낙타입니다.


  아이는 아이 스스로 가장 맞는 몸과 마음을 입고 태어날 뿐입니다. 굳이 남하고 나란히 놓고서 키재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엄마아빠를 아예 못 만나다시피 하면서 할머니랑 할아버지하고 살아간다는데, 엄마사랑과 아빠사랑은 모르고 못 받더라도, 할머니사랑과 할아버지사랑을 날마다 누립니다. 사랑받지 못 하는 삶이 아니라, 늘 사랑받는 삶이요, 다른 또래하고는 그냥 ‘다르기만 하면서 똑같은 사랑’으로 하루를 걸어가는 셈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린배움터(초등학교)를 마치고서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로 접어들면 벌써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히는 얼거리입니다. 이미 어린배움터부터 배움수렁이기도 합니다. 거의 불가마 같은 수렁인데, 모든 아이가 대학졸업장을 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천천히 배우고 느긋이 살피며 찬찬히 살림을 짓고 싶은 아이가 다니면서 노래할 푸른배움터는 있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중학교 졸업장만 있어도, 또는 아무 졸업장이 없이도, 스스로 삶과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나아가고픈 아이들을 이끌고 북돋울 푸른배움터가 있는지요?


  함께 짓는 살림을 같이 누리면서 일구기에 이 삶이 즐거우면서 아름답습니다. 다 다른 아이가 다 다른 이름으로 제 발걸음에 맞게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날랜 ‘들말’도 있지만, 참한 ‘모래말’도 있습니다.


ㅅㄴㄹ


교실에서 한 반 아이들이 낄낄거려 떠드는 얘기라면 담임선생님이라고 모르고 지나갈 리 없겠지. 선생님도 참지 못하고 그만 풉!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어. (10쪽)


“너도 슬픈 일이 있니?” “슬프다니?” “으응, 낙타들을 보면 모두 눈이 슬퍼 보여서. 너도 그렇고.” “꼭 사람 같은 말을 하는구나.” (48쪽)


“할미가 돈이 없어 그것 하나 못 보내 줘 미안하다.” 할머니는 마늘을 까다 맵다고 눈을 비볐어. 이거라도 해야 우리 손주 깨끗한 공책이라도 사 줄 수 있다며 눈물 괸 눈으로 힘없이 웃으면서 말이야. (59쪽)


낙타굼은 깜짝 놀랐어. 할머니는, 우리 새끼가 어째 혹이냐고 화를 내시면서 다 늘그막에 온 선물 같은 아이라는 말까지 하셨거든. (74쪽)


+


《낙타굼》(박기범, 낮은산, 2008)


아이가 된 것 같은 마음이었어요

→ 아이가 된 마음이었어요

5쪽


괜스레 어른인 양

→ 굳이 어른인 척

→ 덧없이 어른처럼

6쪽


그 얘기를 시작으로

→ 그 얘기부터

→ 그 얘기가 터지고

15쪽


아이에게만 남다른 게 있었다면

→ 아이만 남다르다면

15쪽


다 같이 잘 어울렸지

→ 다같이 어울렸지

16쪽


꼭 이거다 싶은 게 쉽게 찾아지지 않았어

→ 꼭 이렇다 싶은 말을 쉽게 찾지 못했어

21쪽


두 패로 갈린 아이들은

→ 둘로 갈린 아이들은

→ 두 쪽으로 갈려서

→ 두 무리로 갈려서

26쪽


아득하게 펼쳐진 사막 위를 헤어져 홀로 걷는 낙타 식구처럼

→ 아득한 모래벌에서 헤어져 홀로 걷는 모래말네처럼

39쪽


물을 먹을 수 있는 땅을 만나게 되어 있지

→ 물을 먹을 수 있는 땅을 만나지

46쪽


기다리면 곧 찾아질 거라는 걸 믿으니까

→ 기다리면 곧 찾으리라고 믿으니까

→ 기다리면 곧 찾는다고 믿으니까

53쪽


지난번 이야기 나누던 걸 잊었냐고

→ 지난 이야기를 잊었냐고

63쪽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건 가만히 견디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야

→ 무엇을 기다린다고 가만히 견디기만 하지 않는 줄 말이야

→ 무엇을 기다릴 적에 가만히 견디기만 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7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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