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지음 / 신어림 / 1996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0.25.

노래책시렁 375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백창우

 신어림

 1996.1.11.



  끗 하나 없는 젊은 사내라면 싸움터(군대)로 끌려가고, 그야말로 끗 하나 없으면 강원도 멧골짝으로 깃듭니다. 1996년 1월에 가시울(휴전선) 코앞으로 갔습니다. 갓 끌려온 새내기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안 웃습니다. 날마다 구르고 얻어맞고 삽질을 하다가 작대기를 어깨에 걸고서 눈바람을 맞으면서 얼어붙을 뿐입니다. 드디어 강원도 양구에서 매서운 겨울이 끝났다 싶으니, 마녘바다로 북녘 자맥배(잠수함)가 넘어왔고, 가으내 죽음수렁 같은 나날이 흘렀습니다. “나 하나쯤 밖(사회)에 없어도 멀쩡히 돌아가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끗 하나 없는 모든 젊은 사내는 싸움터에 갇힌 내내 똑같이 울었을 테지요. 1997년 12월에 비로소 밖으로 나갈 수 있은 뒤부터 책집을 바지런히 다니며 허겁지겁 읽어댔습니다. 이때에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를 읽고서 멍했습니다. “누구는 쌔빠지게 구를 적에, 누구는 푸념과 타령을 하는구나” 싶더군요. 그러나 1996년이면 김영삼 씨가 나라를 어지럽히던 무렵이었고, 적잖은 분들은 헤매고 고달팠겠지요. 다만, 다만, 아무리 모지리 우두머리가 나대더라도, 우리 작은이는 손으로 빨래하고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면 됩니다. 우리 작은사람은 텃밭을 짓고 살림노래를 부를 일입니다.


ㅅㄴㄹ


발을 씻는다 / 오늘은 어디를 돌아다녔는가 / 세상 저물도록 무엇을 찾아다녔는가 / 찌그러진 세숫대야에 발을 담그고 / 먼지 낀 하루를 씻어낸다 (발·1/24쪽)


없다, 내 집은 없다 / 이 지상 어디에도 내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 내 안에 아무도 모르는 외딴 방 하나 생긴 뒤부터 / 어둠 속에 누워 다른 세상을 그리게 된 그날부터 (내 집은 없다, 길이 내 집이다/44쪽)


+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백창우, 신어림, 1996)


이 지상 어디에도 내 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 땅 어디에도 우리 집은 없다

→ 이 나라 어디에도 내가 살 집은 없다

44


어둠 속에 누워 다른 세상을 그리게 된 그날부터

→ 어두운 곳에 누워 다른 곳을 그린 그날부터

→ 한밤에 누워 새터를 그린 그날부터

4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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