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원 창비시선 185
김기택 지음 / 창비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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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10.21.

노래책시렁 453


《사무원》

 김기택

 창작과비평사

 1999.5.1.



  날씨를 알릴 적에는 날씨를 알리면 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울 출퇴근길”이라는 말을 굳이 붙이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서울나라’인 탓에 무엇에든 ‘서울’이라는 이름을 앞에 넣어요. 서울이라는 곳은 논밭이나 들숲이나 바다가 아닌 ‘달삯살림(월급쟁이)’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탓에 ‘출퇴근길’이라는 이름도 웬만하면 안 빠집니다. 그러나 숱한 사람은 ‘출퇴근’이 아니면서도 일을 하고 살림을 꾸리고 하루를 짓습니다. 일터를 다닐 적에도 ‘일꾼’이면서 살림꾼이자 하루짓기이고요. 《사무원》을 가만히 읽습니다. 서울에서 집과 일터 사이를 오가는 ‘어느 사내’가 돌아보거나 부대끼는 발걸음을 담은 듯싶습니다만, 자꾸자꾸 께름합니다. ‘남사무원(남자 월급쟁이)’만 있지 않을 텐데, 짧은치마를 흘깃거리는 눈이라든지, 툭하면 술을 들이켜는 줄거리로 ‘달삯일꾼’을 그려내어도 어울릴는지 아리송합니다. 더욱이 ‘남사무원 눈길로 쓴 문학’은 ‘집안일을 하는 곁님(여성)을 구경할 뿐’입니다. 날마다 온몸을 바쳐서 마룻바닥을 걸레질하는 곁님하고 나란히 걸레질을 한다면 아주 다르게 글을 쓰겠지요. 짧은치마를 구경하는 응큼눈이 아니라, 버스나 전철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그야말로 사뭇 다르게 이 책을 여미었을 테고요.


ㅅㄴㄹ


청정한 法과 道가 / 열대의 온갖 동식물처럼 / 뿌리내리고 자라 넘실거리는, / 뛰고 날고 헤엄치며 노는, / 투명하고 차가운 밀림을 본다. (얼음 속의 밀림/13쪽)


미니스커트처럼 맨살에 싱싱한 바람 감기는 배꼽티. // 미니스커트에서 폭포처럼 곧고 하얗게 쏟아져내리는 다리. // 움직임 없이 그녀는 그 자리에 눈감고 있었다. (늙는 순간에 대한 짧은 관찰/17쪽)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 매일 五體投地하듯 걸레질을 한다. (34쪽)


칼자국 무늬로 나이를 먹은 / 늙은 도마 위에서 / 산낙지 한마리 / 내리치는 식칼과 싸우고 있네 (포장마차에서/41쪽)


빈속에 술을 마신다. / 술이 몸의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內省的/66쪽)


+


《사무원》(김기택, 창작과비평사, 1999)


허리가 공손하게 굽어지는 추위 정신통일하며 밥생각을 하면

→ 허리를 다소곳하게 굽는 추위 오롯이 밥생각을 하면

→ 허리를 얌전하게 굽는 추위 가만히 밥생각을 하면

8쪽


결빙의 힘 속에 식물의 본능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 어는 힘에 풀빛이 숨었을까

→ 얼어붙는 힘에 풀숨이 있었을까

12쪽


그는 매일 상사에게 굽실굽실 108배를 올렸다고 한다

→ 그는 날마다 윗분한테 굽실굽실 108절을 올렸단다

→ 그는 늘 윗사람한테 굽실굽실 108절을 올렸다고 한다

20쪽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매일 五體投地하듯 걸레질을 한다

→ 순이는 칸과 마루한테 먼지한테 노상 온몸절하듯 걸레질을 한다

→ 가시내는 칸과 마루한테 먼지한테 늘 온몸바쳐 걸레질을 한다

3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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