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읽지 않는다 : 누가 읽더라도 굳이 나까지 읽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누구도 안 읽지만 나는 스스럼없이 챙기고 찾고 살펴서 읽는다. 추천도서나 명작도서나 고전으로 이름을 올린다지만 구태여 나까지 읽을 까닭은 없다고 여긴다. 아직 어느 누구도 책글(서평·소개글)을 안 쓴 책이라지만 내가 먼저 읽으면서 아름다운지 아닌지 살펴서 책글을 쓰자고 여긴다. 문학상을 받았다기에 읽지 않는다. 별꽃을 수두룩하게 받았다기에 읽지 않는다. 큰책집에 수북하게 쌓였기에 읽지 않는다. 이름을 드날린 분이 썼기에 읽지 않는다. 손꼽히는 곳에서 펴냈기에 읽지 않는다. 글쓴이하고 펴냄터 이름을 가린 채 먼저 서서읽기를 한다. 책집에 서서 넌지시 읽는다. 선 채로 한 벌 읽는 동안 “이 책을 집으로 들고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벌을 읽을 만하고, 집에서 느긋이 새로 더 읽을 만하다”고 느낀다면 장만한다. 서서읽기로 넉넉하다면 얌전히 내려놓는다. 사람을 마주할 적에는 얼굴이 아닌 마음을 바라보면서 어울리고 싶다. 서로 이야기를 할 적에는 “말씨에 묻어나는 마음씨”를 느끼면서 내 말씨에 내 사랑씨를 얹고 싶다. 대통령·국회의원·군수(시장)를 뽑는 날이 오더라도, 뽑을 만한 일꾼이 안 보이면 “투표소에 가서 투표용지에 ‘일꾼이 안 보여서 어느 누구도 안 찍습니다’ 하고 슥슥 적어 놓고서 나오는” 나날이다. 바람과 바다와 구름과 비와 풀꽃나무와 새와 나비와 흙과 씨앗과 풀벌레라고 한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모두 읽는다. 별빛과 햇빛도 언제 어디에서나 늘 읽는다. 굳이 서울을 읽어야 할까? 굳이 종합일간지나 시사잡지를 읽어야 할까? 아이들 눈빛부터 읽고 나서야 서울을 읽을 노릇이라고 본다. 들숲바다를 읽지 않은 채 섣불리 신문이나 잡지를 손에 안 쥐어야 한다고 본다. 2024.10.18.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