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병동으로의 휴가 - F/25
김현경 지음, 노보듀스 그림 / 자화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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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10.15.

인문책시렁 376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

 김현경 글

 노보듀스 그림

 자화상

 2019.2.20.



  나라는 늘 미쳐돌아갑니다. 설마 이를 몰랐다면, 모르는 사람이 바보라고 할 만합니다. 예부터 모든 ‘나라’는 하나도 안 아름다웠습니다. 나라를 세우려고 할 적에는 언제나 사람들을 짓밟고 주무르면서 싸울아비로 부려서 괴롭힙니다. 그래야 “나라가 서”거든요. 이른바 ‘나라지기’를 맡는 이는 ‘사랑’이 없이 ‘힘’으로 찍어서 누르고 죽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따릅니다. 오늘날은 ‘민주’라는 이름을 쓰지만, 민주를 내세우는 나라에서도 ‘나라지기’는 썩 다를 바 없습니다. 뒤에서 속이고 꿍꿍이를 일삼으면서 사람들이 눈멀고 귀멀어 고분고분 따르는 틀을 세웁니다. 그래서 공문서나 법이 어려운 말로 가득하고, 학교는 계급장 노릇을 하고, 돈으로 옭아매다가, 군대로 서슬퍼렇게 휘감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왼오른으로 갈려서 다투도록 부추겨서, 막상 “나라 민낯을 못 보도록 길들”이게 마련입니다.


  말끝 하나가 다를 뿐인데, 우리는 ‘나라’ 아닌 ‘나’를 보아야 합니다. 한자말로 치지만 ‘국가(國家)’가 아닌 ‘집(家·가)’를 보아야 하지요. 저마다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찾고 생각할 적에 눈을 뜨고 마음을 틔워서 사랑으로 깨어납니다. 저마다 스스로 보금자리(집)를 가꾸고 돌보면서 하루를 지을 적에 “나랑 네가 어울려서 우리가 집을 짓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나랑 너’는 두 어버이를 이루는 어른 두 사람(엄마·아빠)이기도 하고, 아이어른이기도 합니다. 나랑 너를 사랑으로 아우를 적에 하늘빛으로 하나로 모이는 ‘우리’를 함께 이룹니다. 그래서 ‘나·너’라는 말이 얽히고, ‘하나’라는 낱말에 ‘나’와 ‘하늘’이라는 밑뜻이 깃들고, ‘나 + 너 = 우리 = 하늘’인 수수께끼를 들여다볼 만합니다.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를 읽었습니다. 돌봄담(폐쇄병동)에 갇힌 나날을 그렸나 하고 읽어 보는데, 갇혔다기보다 ‘열흘쯤 쉬려’고 들어가서 보낸 줄거리를 엮었습니다. ‘열흘쯤 바깥을 닫아걸고서 쉬려고 들어가는 정신병원’이 나쁠 일이란 없어요. 워낙 이 나라는 미쳐돌아가니까, 열흘뿐 아니라 보름이나 달포를 틈틈이 쉬지 않고서는 ‘나라’뿐 아니라 ‘나’까지 미쳐돌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서울(도시)에 머물 적에는 자꾸 나라꼴을 쳐다볼밖에 없습니다. 서울에서 열흘을 쉬려고 돌봄담에 들어가서 목돈을 쓰기보다는, 아예 서울을 떠나서 시골이며 들숲바다에 깃을 들이는 길이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시골에 작은집을 마련해서 다달이 이레쯤 푹 쉬면서 손전화도 끄고 셈틀도 안 켜면서 숲과 들과 바다를 품으면서 풀과 꽃과 나무를 헤아리고, 풀벌레와 새와 바람과 비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면, 아무리 미쳐돌아가는 나라꼴이 춤추더라도, 누구나 아늑하면서 고요하고 즐겁게 마음을 다독일 만하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스스로 서울이라는 담벼락에 갇히기 때문에 미칩니다. 우리가 스스로 서울에서 돈벌이를 찾으려고 하니까 늘 미칠 수밖에 없어요. 돈이 아닌 살림을 가꾸는 시골집을 헤아리는 길로 마음을 살며시 틔워 본다면, 어떠한 병원도 학교도 정부도 없이,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는 이웃하고 도란도란 하루를 노래하겠지요. 병원에 가지 말고, 시골로 갑시다.


ㅅㄴㄹ


술은 물론이고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죽거나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물건도 금지되어 수건마저도 반으로 잘라 씁니다. (12쪽)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아 전화를 했는데, “8월 말에 예약을 잡아 드릴까요?” 하는 식의 답변이 돌아왔다. (38쪽)


이제는 잘 모르겠다. 도와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46쪽)


실은 엄마 탓은 없다. (71쪽)


요 얼마간 술값만 몇백만 원을 썼는데 그 누구라도 대충 아무거나라도 사다 주지 않았다. 나는 통장 잔액이 있어도 매일 5000원만 쓸 수 있는데! (183쪽)


+


《폐쇄 병동으로의 휴가》(김현경, 자화상, 2019)


지금의 저도 조증 상태로 이렇게

→ 오늘 저도 들뜬 채 이렇게

11쪽


나보다 어린 누군가가

→ 나보다 어린 누가

21쪽


도와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 도와주라고 말해야겠다

→ 돕길 바란다고 해야겠다

46쪽


서울에 다시 올라왔다

→ 서울에 다시 왔다

50쪽


곧바로 들어가는 게 제일 빠르고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 곧바로 들어가야 가장 빠르고 마음에도 나을 듯하다

→ 곧바로 들어가야 가장 빠르고 낫다

60쪽


실은 엄마 탓은 없다

→ 막상 엄마 탓은 없다

→ 정작 엄마 탓은 없다

→ 근데 엄마 탓은 없다

71쪽


혼자 자꾸 자격지심이 든다

→ 혼자 자꾸 부끄럽다

→ 혼자 자꾸 서럽다

→ 혼자 자꾸 슬프다

84쪽


친구들과 브런치를 먹을 때

→ 동무하고 낮밥을 먹을 때

→ 동무하고 곁밥을 먹을 때

→ 동무랑 덧밥을 먹을 때

103쪽


대변부터 잠을 개운하게 잤는지까지 확인하고 나도 생각하게 된다

→ 똥부터 잠을 개운하게 잤는지까지 살피고 나도 생각한다

113쪽


가운이 아니라서

→ 흰옷이 아니라서

→ 일옷이 아니라서

241쪽


제가 폐쇄병동에 가게 된 이유는

→ 제가 돌봄울에 간 까닭은

→ 저는 돌봄담에 갔는데

24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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