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새가 있어 (2024.10.9.)
― 부천 〈빛나는 친구들〉



  부천나루 앞에서 부천버스를 탈까 하다가 걷습니다. 버스나루가 붐비더군요. 큰길과 가게 둘레에는 사람이 물결치지만,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니 조금씩 호젓합니다. 높다란 잿집을 벗어나서 골목으로 접어들 즈음부터 부릉소리가 잦아들고 새소리를 듣습니다. 나즈막한 예전 닷겹잿집(5층아파트)이 깃든 골목에는 골목나무가 우람해서 닷겹보다 높아요. 이 골목나무에 박새랑 쇠박새랑 직박구리랑 참새가 앉아서 노래합니다. 고을지기(시장·구청장)는 골목나무에 앉은 골목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알까요? 고을일꾼은 골목노래와 골목빛을 눈여겨볼까요?

  이튿날 부천 송내초등학교 어린이하고 우리말 이야기꽃을 폅니다. 저는 이끄는 이슬지기 노릇이고, 어린이는 함께 걸어가는 길동무입니다. 한 사람이 앞장서기에 잘 따르거나 잘 배우지 않습니다. 이슬은 풀과 나무를 살찌울 뿐 아니라, 숲짐승과 풀벌레와 사람까지 두루 살뜰하기를 바라면서 맺습니다. 이슬지기는 어린이하고 나란히 걸으면서 모든 어른하고 동무합니다.

  나이를 바라보지 않으면 함께 배웁니다. 나이에 얽매이니 못 배우고 안 배워요. ‘나이’가 아닌 ‘나’를 바라볼 때면, 나하고 마주선 ‘너’를 느끼고, 이때에 ‘나너없’고 ‘너나없’는 ‘너나들이’를 이루면서 오롯이 ‘사람’을 마주하다가 문득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가는 ‘사이(새)’를 알아봅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잇는 새를 알아보고서 새노래를 귀여겨듣기에 사람답습니다. 새노래를 안 듣기에 새를 우리 삶터에서 밀어내거나 내쫓습니다. 온누리는 사람나라이지 않아요. 뭇숨결이 어울리는 푸른별이고, 뭇노래가 흐르는 파란별입니다.

  새가 있어서 즐거운 마을입니다. 새가 있기에 빛나는 시골입니다. 새가 있으니 우거진 숲입니다. 새가 있는 곳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어른들은 일하지요. 오늘날 서울(도시)이 서울빛을 잃고서 헤매는 까닭을 짚어 봐요. 새를 잊은 탓 같아요.

  부천 골목길을 돌고돌던 발걸음은 〈이지헌북스〉에 한참 머물면서 발바닥과 무릎과 온몸과 등허리를 쉽니다. 이윽고 부천여고 곁에 선 〈빛나는 친구들〉로 다다릅니다. 다만 오늘 〈빛나는 친구들〉은 쉼날입니다. 책집은 쉬지만, 책집 앞에 놓은 자리에 등짐을 내려놓고서 땀을 들입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새소리를 더 듣습니다. 물 두 모금을 마시고 새노래를 새삼스레 듣습니다. 이제 등짐을 어깨에 걸칩니다. 여러 짐도 두 손에 꿰고서 걷습니다. 길손집에 가서 씻고 누워야지요. 오늘 이곳에서 거닐며 보고 느끼고 듣고 누린 살림빛을 밤새 곱씹으면서 새벽에 노래 몇 자락을 쓰자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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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을 노래하는 이웃님 글
https://blog.naver.com/artbutterfly/223612656095


김예린 오마이뉴스 글
: 가랑비·이슬비·보슬비가 다 다르답니다, 이렇게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68346&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dvOpinion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448338?s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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