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9.27. 죽어가는 길
부산으로 건너가려고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선다. 시골에서는 할매할배가 새벽길을 나선다. 새벽부터 첫버스를 기다리거나 옆마을로 걸어가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드문드문 있되, 이 아이들은 으레 어버이 쇳덩이를 얻어탄다.
시골 할매할배는 걷기도 버겁고 버스에 오르내리기도 힘겹다. 젊어서부터 쇳덩이를 몰지도 않았고, 여든줄에 쇳덩이를 장만하거나 몰 일도 없다. 젊어서 쇳덩이를 몰던 이는 거의 다 서울로 나갔다. 한길이란 나가는 길이다. 빠르고 넖은 길이란 서울로 가는 길이다.
시골에서는 빨라야 하지 않은데, 풀꽃나무는 제철에 제빛으로 나고지고 자라는 숨결이다. 사람도 풀꽃나무를 닮는 시골이니 느긋느긋 오가면 넉넉하다. 그러나 이미 서울로 잔뜩 나가서 휑하니 빈 시골은 조금 남은 사람과 겨우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을 얼른 내보낼 참인 듯싶다. 자꾸 큰길을 내려 하고, 자꾸 쇳덩이를 늘린다.
예전에는 사람과 새와 짐승과 벌레와 지렁이와 비와 바람과 해와 별과 풀과 나무가 어울린 길이다. 요사이는 오직 사람만 다녀야 하는 길이면서, 쇳덩이가 빵빵거리는 길이다.
아이들은 시골에서 무엇을 보나.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나. 시골도 서울도 아이들한테 볼꼴사나운 짓을 한가득 보여주지 않는가.
살아가는 길이 아니기에 죽어가는 길이다. 돈만 바라보기에 죽어가는 길이다. 서울만 쳐다보기에 죽어가는 길이다. 남을 구경하느라 참나를 잊고 등돌리니 죽어가는 길이다. 숲을 모르니 죽어가는 길이다. 너랑 나 사이에 바람괴 비와 별과 꽃이 없으니 죽어가는 길이다.
무슨 책을 읽는가. 쌈박질 붙이는 미움씨앗을 읽는가. 허울스레 빈말잔치인 치레씨앗을 읽는가. 이름을 드날리고 돈을 거머쥐려고 용쓰는 바보씨앗을 읽는가. 마음을 담는 말하고 한참 먼 문학이라는 껍데기씨앗, 이른바 쭉정이를 읽는가.
스스로 아이로 살아온 나날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어른스레 빛날 마음에 사랑으로 숲을 심는 노래씨앗을 읽을 때라야, 너도 나도 사람이리라.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