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말꽃삶 19 탈가부장
갇힌 말을 깨우다
조선이란 이름을 쓰던 나라는 500해에 걸쳐서 ‘중국 섬기기’를 했고, 이 나라 사람을 위아래로 갈랐습니다. 중국을 섬기던 조선 나리하고 벼슬꾼은 집안일을 순이한테 도맡기고, 나라일은 돌이만 도맡는 틀을 단단히 세웠지요. 곰팡틀(가부장제)을 일삼았습니다.
나리·벼슬꾼이 나아가는 곰팡틀은 한문만 글이었습니다. 세종 임금이 여민 ‘훈민정음’은 ‘중국말을 읽고 새기는 소릿값’으로 삼는 데에 그쳤어요. 오늘날 우리가 안 쓰는 ‘훈민정음’이 제법 있습니다. 우리 소릿값이 아닌 중국 소릿값을 담아내는 틀이었기에, 굳이 살릴 까닭이 없어서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여느사람(백성·평민)은 글(한문)을 못 배우도록 틀어막았습니다.
조선이란 나라가 아닌, 고구려·백제·신라·발해·가야·부여에서도 나리하고 벼슬꾼은 집안일을 안 했을 테지만, 곰팡틀까지 일삼지는 않았어요. 이 곰팡틀은 이웃나라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오며 외려 더 단단하였고, 일본이 물러간 뒤에도 서슬퍼런 총칼나라(군사독재)가 잇는 바람에 곰팡틀을 걷어낼 틈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곰팡틀을 이제 겨우 걷어내는 판입니다. 지난날에는 나리·벼슬꾼 사이에서만 곰팡틀이 퍼졌다면, 일본이 총칼로 억누르던 무렵에는 모든 사람한테 곰팡틀이 퍼졌고, 총칼나라에서는 이 굴레가 깊디깊이 스몄습니다.
살림을 사랑스레 가꾸는 집안이라면 집안일을 순이돌이가 함께합니다. 토막으로 갈라서 누구는 이만큼 하고 누구는 저만큼 하는 얼개는 살림짓기하고 한참 멉니다. 밥짓기든 옷짓기든 집짓기든 순이돌이가 나란히 할 줄 알아야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아름답게 건사합니다.
순이가 아기를 낳아 돌볼 적에 누가 밥살림에 옷살림을 해야겠는지 생각할 노릇입니다. 마땅히 돌이가 맡아야지요. 가시버시 가운데 한 사람이 다치면 집안일뿐 아니라 집밖일을 누가 맡겠는지 생각해 봅니다. 마땅히 둘 모두 집안팎일을 나란히 다스릴 줄 알아야 집안이 아늑하면서 즐거워요.
중국을 섬기던 나리·벼슬꾼이 쓴 글(한문)은 우리말이 아닌 중국말입니다. 나리·벼슬꾼이 쓰던 글은 오늘날 ‘중국 한자말’하고 ‘일본 한자말’이란 꼴로 남습니다. 지난날 글을 하나도 모르는 채 수수하게 살림하고 사랑으로 아이를 돌본 사람들이 쓰던 말은 ‘사투리·시골말’로 남았으며, 이 사투리는 차근차근 자라고 뻗으면서 ‘삶말·살림말·사랑말·숲말’로 새롭게 태어나려고 합니다.
곰곰이 본다면, 우리는 우리말을 쓴 지 아주 오래이지만, 우리말을 우리글로 제대로 담은 지는 얼마 안 되어요. 세종 임금이 훈민정음을 여미던 때에는 “중국말을 훈민정음으로 가끔 담았”습니다. 주시경 님이 훈민정음이란 이름을 ‘한글’로 바꾸고서 ‘우리말길(국어문법)’을 처음으로 세우고 펴던 무렵부터 “우리말을 우리글로 늘 담는 살림”을 비로소 누릴 수 있었고, 일제강점기·군사독재를 한참 지나 1990년쯤 이른 무렵부터 “근심걱정이 없이 우리말을 우리글로 언제 어디서나 담는 하루”를 제대로 누린다고 할 만합니다.
다만 1990년쯤 이르면, 그만 영어물결이 드높고 말아,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하루”가 흔들리지요. 2000년을 넘고 2020년을 넘어도 영어물결은 안 낮습니다. 더구나 그동안 ‘중국 한자말’이 꽤 걷혔지만, 일본수렁부터 ‘일본 한자말’이 나라 곳곳에 퍼진 바람에,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중국 한자말·일본 한자말·영어’ 등쌀에 눌리거나 밟히면서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하루”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짚거나 살피거나 배우거나 나누는 길하고는 퍽 멀어요.
우리는 왜 우리말을 우리말로 제대로 못 담을까요? 바로 ‘곰팡틀(가부장제)’이 여태껏 크게 춤추거든요. ‘곰팡틀 = 꾼’이기도 합니다. ‘꾼 = 전문가’입니다. ‘곰팡틀에 갇힌 말 = 꾼말’이요, 이는 ‘전문용어 = 가부장 권력에 찌든 말’인 얼개이니, 오늘날 이 나라에서 널리 쓰는 숱한 꾼말(전문용어)은 하나같이 ‘일본 한자말’이거나 영어이거나 옮김말씨(번역체)입니다.
우리가 보금자리뿐 아니라 삶자리하고 마음자리에서 곰팡틀을 걷어낼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말을 우리글로 담는 하루”를 이룹니다. 일본앞잡이(친일부역자)를 걸러내기만 해서는 우리 삶을 되찾지 않아요. 일본 한자말이 ‘좋거나 나쁘다’고 가릴 일이 아닌, 곰팡틀에 갇힌 마음으로 함부로 퍼뜨리고 써온 말씨에 백 해 가까이 길들다 보면, 꾼이 아닌 여느 순이돌이조차 꾼말을 안 쓰면 마치 뒤처지거나 바보인 듯 스스로 깎아내리는 마음이 싹틉니다.
사투리하고 시골말을 가만히 헤아릴 노릇입니다. 글(한문)을 모르고 배움터를 다닌 적이 없고 책을 읽은 일조차 없던 수수한 순이돌이는 거의 다 흙사람이었습니다. 지난날 거의 모든 수수한 순이돌이는 글은 한 줄조차 모르고 못 읽었으나, 늘 말로 이야기를 펴고 들려주고 남겼습니다. 지난날 흙사람인 순이돌이는 제 보금자리에서만 지냈으니 먼 마을이나 이웃고장은 아예 모르며 살았는데, 다 다른 고장에서 살던 다 다른 순이돌이는 다 다르게 사투리를 스스로 지어서 썼습니다.
사투리는, 스스로 지은 말입니다. 사투리는,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지은 사람들이 삶·살림·사랑을 고스란히 담아 스스로 지은 말입니다. 사투리는,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주는 삶·살림·사랑을 고스란히 담은 말입니다. 사투리는, 모든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짓도록 북돋우는 마음이 빛나는 말입니다. 사투리는, 바로 우리말입니다. 시골사람이 지어서 쓰고 흙사람이 지어서 쓴 사투리는, 두고두고 삶·살림·사랑을 밝힐 ‘즐거우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숲말입니다.
하나하나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리·벼슬꾼은 중국을 섬기면서 집일을 하나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돌보았어요. 이와 달리 흙사람인 순이돌이는 스스로 일구면서 집일을 함께하고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보았어요. 나리·벼슬꾼이 쓴 글(한문)은 임금이나 중국을 치켜세우는 뜬구름 같은 줄거리만 판칩니다. 글을 모르고 말로 삶·살림·사랑을 여민 수수한 순이돌이가 남긴 이야기(옛이야기)는 매우 쉽고 상냥하게 아이어른 모두한테 슬기로운 길잡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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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벼슬꾼은 이름을 남겼을 테지요. 국립국어원이 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이처럼 나리·벼슬꾼 이름이 잔뜩 나옵니다. 우리 낱말책에 ‘우리말’이 아닌 ‘나리·벼슬꾼 이름’이 끔찍하도록 많이 실려요. 그런데 이들 ‘나리·벼슬꾼 이름’을 가만히 보면 죄다 사내(남성)입니다. 이른바 ‘곰팡틀 사내(가부장 권력 남성)’ 이름을 《표준국어대사전》에 줄줄이 실어요.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가 쓸 말은, 우리가 아이한테 물려줄 말은, 나리도 벼슬꾼도 아닌 수수한 순이돌이가 스스로 지어서 쓴 ‘삶말·살림말·사랑말·숲말’입니다. 이름도 없고 글도 없이 조용하게 살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 돌보았고 살림살이도 손수 가꾸고 짓던 흙사람이 지은 말이야말로 우리가 즐겁게 돌보고 아름다이 사랑할 말입니다.
이 밑뿌리를 읽어낼 수 있다면 ‘중국 섬기기(사대주의)에 길든 곰팡틀(가부장 권력)’이란, 고작 ‘조선 500년 나리·벼슬꾼’에 ‘오늘날 벼슬꾼·글바치·전문가’일 뿐인 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수수하게 보금자리를 보살피면서 하루를 사랑하는 여느사람은 언제나 집안일·집살림을 함께하고 어깨동무하는 마음으로 우리말을 우리글로 넉넉히 담아낼 만하다고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새롭게 서려는 자리에서 ‘탈 가부장’ 같은 어려운 말을 써도 안 나쁩니다만, 굳이 어렵게 말해야 하지 않아요. 우리는 저마다 ‘살림돌이·살림순이’로 노래하면 즐겁습니다. ‘살림꾼·살림님’이란 이름을 스스로 붙이면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가정주부·주부’가 아닌 ‘살림꽃’으로 서기에 사랑스럽습니다.
말 한 마디부터 찬찬히 읽으면서 생각을 가꿀 적에 곰팡틀을 싹 털어낼 만합니다. 말 한 마디부터 사랑으로 다독여 즐겁게 꽃피울 적에 모든 꾼말을 말끔히 걷어내고서, 이 자리에 삶말·살림말·사랑말이 자라나서 푸르게 우거지는 숲으로 나아가도록 북돋울 만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