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아늑히 (2021.10.9.)

― 인천 〈나비날다〉



  새벽을 열고 가을골목을 돌아봅니다. 가을빛으로 물든 골목 곳곳에는 가을내음이 번집니다. 가을은 시골에도 큰고장에도 나란합니다. 빽빽하게 들어찬 쇳덩이와 잿집 사이에도 가을바람이 불고 가을볕이 드리웁니다. 마음에 꿈씨를 심어서 꿈꽃을 피우는 그림을 품는다면, 누구나 무엇이든 스스로 받아들여서 일군다고 느껴요.


  오늘날 시골에서는 마흔줄 나이는 ‘아기’로 여기고, 예순줄 나이는 ‘젊은이’로 칩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야 ‘어른’일까요? 나이는 많되 철이 안 든다면 아기도 젊은이도 어른도 아닌 ‘철바보’이지 싶습니다. 인천 미추홀구청장은 ‘골목’이란 낱말을 몹시 싫어한다더군요. 골목을 몰아내어 잿집(아파트)으로 높이 세우기를 바라다 보니, 작은이가 어깨동무하는 작은마을에서 함께 오가는 길을 나타내는 이름인 ‘골목’을 싫어할 만합니다.


  쉬운 우리말에는 모든 수수께끼가 깃듭니다. ‘골목’은 ‘골 + 목’인데, ‘골’은 ‘고을’을 줄인 낱말이면서, ‘뇌’를 가리키는 우리말이요, ‘골짜기·멧골’을 나타내는 ‘골’이기도 합니다. ‘고랑’하고 말밑이 같아요. 이 얼거리를 넓혀서 ‘나·남’을 들여다보면 고작 ‘ㅁ’이라는 받침 하나로 가를 뿐입니다. 우리말에서 ‘ㅁ’은 ‘길·집·어귀’를 빗대곤 합니다.


  낮나절에 〈나비날다〉에 깃듭니다. 오늘 펼 여러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훈민정음날’이 아닌 ‘한글날’이라는 이름인데, 왜 이런 이름인지 돌아보는 분이 뜻밖에 매우 적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이 ‘한글’이라면, 우리가 하는 말은 ‘한말’일 텐데, 이 대목을 살피는 분은 더욱 적습니다.


  스스로 물어보고 찾아나서면 스스로 알아내게 마련입니다. 무엇이 이 삶에 아름답게 스밀는지 궁금하다면, 스스로 아름길을 찾아나서는 하루를 짓습니다. 궁금하지 않으니 안 찾아나서고, 궁금빛을 안 일으키니 안 아름다워요.


  맑게 가꾸는 말빛은 저마다 마음자리에서 자랍니다. 훌륭한 책을 읽어야 말빛이 자라지 않습니다. 스스로 보금자리를 아늑히 돌보는 손길이 눈길을 거쳐 마음길에 닿기에 맑고 밝게 빛나는 말씨입니다. 낮빛이란 햇빛에 하늘빛과 들숲빛과 바다빛을 더한 결이라면, 밤빛이란 고요빛과 별빛에 밤노래(밤새+풀벌레 노래)가 어울린 결이라고 느껴요.


  ‘높임말’이란, 남을 높이거나 나를 낮추는 말이 아닌, 서로 헤아리거나 살피면서 북돋우는 말로 태어났을 테지요. 위아래를 죽죽 가르거나 긋는 틀로 가두려고 하면 ‘굴레말’입니다. 이제는 굴레를 떨치고서 살림말로 가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책의 사전》(표정훈, 유유, 2021.8.14.)

《우리말 어감 사전》(안상순, 유유, 2021.5.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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