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4.9.10. 서로 가는 길
지난 사흘(흙·해·달)에 걸쳐 다섯 눈금(시간)을 잤다. 그리 대수로운 일은 아닌데, 고흥에서 부산으로 건너가느라 거의 밤을 새웠고, 부산에서 이틀을 〈해변의 북키스트〉를 함께하며 잠틈이 밭았고, 부산서 일을 마치고서 고흥으로 돌아오던 달날에도 이모저모 살피면서 눈자위를 꾹꾹 눌러 주면서 몸을 움직였다.
시골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씻고 집밥을 누리고, 다시 씻고, 또 씻고는 등허리를 조금 펴려고 누웠는데, 내처 일곱 눈금을 꿈나라로 갔다. 새벽에 풀죽음물(농약)을 마구 뿌려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어느 고장에서는 ‘풀죽음물 뿌리는 젊은이’가 하루 80만 원쯤 일삯을 받는다는데, 이곳 고흥에서는 하루일삯이 얼마쯤일까? 이 나라는 왜 ‘숲짓기(자연농)’에는 아무 밑돈을 대지 않으나, 풀죽임물을 잔뜩 뿌릴 적에는 어마어마하게 밑돈을 댈까?
더 돌아본다면, ‘전기자동차 보조금’을 비롯한 ‘친환경 보조금’이 엄청나게 많다. 이와 달리 ‘뚜벅이 보조금’이나 ‘자전거 보조금’은 0원이다. 모르는 분이 참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자전거 관세’까지 있다. 두바퀴가 어떻게 ‘사치품’일까? 두바퀴가 100만 원이나 200만 원이라 하더라도 사치품일 수 없다. 10만 원짜리 두바퀴는 한두 해 굴리다가도 헌쇠(고철)가 되기 쉬우나, 100만 원을 들인 두바퀴나 1000만 원을 들인 두바퀴는 스무 해나 쉰 해를 달려도 멀쩡하다.
값싸게 사서 조금 쓰다가 버려야 한다면, 바로 이럴 적에야말로 ‘사치품’이지 않을까? ‘질소를 담은 과자자루’야말로 사치품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커피를 담은 비닐잔이나 종이잔을 사치품으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 그래서 나는 뚜벅뚜벅 걷다가, 두바퀴를 슬슬 논두렁을 따라서 달린다. 나는 시골에서나 서울(도시)에서나 그저 걷고, 두바퀴를 달리거나, 버스나 택시에 몸을 싣는다. 내가 가는 길이란, 해를 바라보고 바람을 마시고 풀꽃나무하고 동무하고 나비랑 새를 살피면서 걸어가는 하루이다. 내 둘레에는 다들 다르게 하루를 가겠지.
곰곰이 짚어 본다.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으레 걷거나 두바퀴를 달리거나, 이따금 쇳덩이(자동차)를 얻어탄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손수 쇳덩이를 모는 일이란 없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어떻게 살아가는 하루를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보여주고 물려주어야 할까? 우리가 어른이라면 어린이 곁에서 발걸음을 맞추어 걸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어른이라면 푸름이하고 나란히 두바퀴를 달리면서 바람을 쐬는 수다를 떨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어른이 아니기에 으레 쇳덩이부터 몰아댄다고 느낀다. 우리가 어른이 아니기에 안 걷거나 두바퀴를 멀리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전기자동차 보조금’ 따위는 진작에 걷어치우고서 ‘뚜벅이 보조금’과 ‘자전거 보조금’으로 돌릴 뿐 아니라, ‘관용차 폐지’를 이루겠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