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런닝구 보리 어린이 3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 보리 / 199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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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8.23.

노래책시렁 432


《엄마의 런닝구》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보리

 1995.4.15.



  아직 어린이가 걸어서 집과 마을과 배움터 사이를 오가던 무렵에는, 어린이가 저마다 하루를 느끼고 하늘을 바라보고 땅과 들과 숲을 헤아렸습니다. 아직 어버이가 도시락을 싸서 아이한테 건네던 즈음에는, 어버이도 아이도 ‘손길을 담는 사랑’을 나란히 느끼고 누렸습니다. 이제는 걷는 어린이가 확 사라집니다. 어느새 집집마다 도시락을 안 싸는 판입니다. 안 걷고, 밥살림을 등졌다면, 어떤 하루를 보내면서 어떤 말을 섞으려나요? 《엄마의 런닝구》는 1995년에 처음 나왔고, 꽤 예전 어린이가 보내던 나날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어느새 해묵었구나 싶은 글일 수 있지만, 스스로 걸어다니던 모든 어린이가 느끼던 마음을 담았고, 어버이하고 아이 사이에 사랑이 흐르던 마음을 옮겼어요. 요즈음은 어린이한테 이처럼 삶글을 쓰라고 북돋울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시 나올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걷는 아이어른’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함께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싸는 아이어른’도 만나기 힘든 만큼, 손빛이 흐르는 글이란 어떤 노래(동시·어른시)에서도 엿볼 수 없겠더군요. ‘짓다’는 손으로 새롭게 일구는 삶을 나타냅니다. 지을 줄 모른다면, ‘짓다’라는 낱말부터 잊고 잃었다면, 삶글뿐 아니라 살림글도 잊고 잃을 테지요.


ㅅㄴㄹ


나무 밑에 있으니 / 바람 소리가 / 파라파라거린다. / 그 소리가 좋다. / 바람이 피리를 분다. (바람 소리-서울 구일초 2년 박철순/19쪽)


달롱과 꼬들빼기를 캐 먹고 / 또 마늘을 심고 / 그러면 싹이 트고 / 아후 빈 밭은 없는가 보다. (빈 밭-강원 정선 봉정분교 5년 배연표/24쪽)


내가 집으로 혼자 걸어오는 길 / 어쩌다 풀 속에 뱀이 있으면 / 막 앞으로 달려와 / “와아 시껍아! / 내일부터는 일로 안 와야지.” 하는데도 / 그 다음 날에도 오는 길. (논두렁길-경북 경산 부림초 6년 성재욱/38쪽)


비가 오는데도 / 어미소는 일한다. / 소가 느리면 주인은 / 고삐를 들고 때린다. / 소는 음무음무거린다. / 송아지는 모가 좋은지 / 물에도 철벙철벙 걸어가고 / 밭에서 막 뛴다. (비 오는 날 일하는 소-경북 울진 온정초 4년 김호용/59쪽)


아침 일찍 시장에 나와 / 아직도 고기를 못 판 어머니 / 지나가는 사람보고 / “마수요, 좀 사 가소.” 한다. // 어머니 옆에서 파는 아주머니는 / 벌써 다 팔고 / “뜨리미요 뜨리미, 많이 주께요.” 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어 억지로 판다. (어머니-부산 감전초 6년 박미정/140쪽)


이모 집에 갔다 오는 길 / 서부 정류장에서 어떤 할머니 한 분 / 머리에 목도리를 두르고 / 허리엔 헝겊을 칭칭 감고 / 한 푼만 주세요 하며 / 사람들에게 졸랐다. / 돈은 아무도 주지 않았다. / 할머니가 나한테 다가왔다. / 이모가 날 데리고 / 다른 데로 가 버렸다. (어떤 할머니-대구 북동초 6년 이경미/20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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