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 문학동네 시인선 73
고영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8.22.

노래책시렁 441


《구구》

 고영민

 문학동네

 2015.10.28.



  적잖은 사내가 ‘사랑’이 아닌 ‘그짓’을 하려고 노닥골목에 간다지요. 더구나 싸울아비(군인)로 끌려간 사내는 멧골짝에 갇혀서 몇 달을 옴쭉달싹 못 하는 채 괴롭고 지쳐서, 틈(휴가)을 얻어서 밖으로 나오면 그짓을 벌일 노닥골목에 간다고도 합니다. 이른바 ‘주한미군·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머물던 둘레는 온통 술집과 노닥집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싸움판(군대) 둘레만이 아니라, 돈이 우수수 떨어지는 둘레도 으레 술집과 노닥집이 넘칩니다. 《구구》를 읽다가 56쪽에서 노닥집 모습을 훤하게 보면서 덮었습니다. 이런 그짓도 글쓴이 삶이요, 창피하거나 부끄럽다고 숨기기만 하기보다는, 글로 담아낼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글로 담는 마음이란 뭘까요? 뭘 글로 담으면서 어떤 마음길을 밝히거나 그동안 어떤 나날을 어떻게 다스렸다는 뜻을 들려주려는 셈일까요? 글쓰기란, ‘구경하던 삶’을 옮기는 붓질로 그칠 수 없습니다. 글쓰기란, ‘삶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서 끝날 수 없습니다. 아직 사랑을 모르는 채 그짓에 몸도 마음도 팔린 나날을 애써 글로 옮기려 했다면, 오늘은 얼마나 어떻게 사랑을 마주하거나 스스로 짓는 발걸음이나 손길인지 돌아봐야지 싶습니다. 사랑이 아니거나 없기에 그짓을 하거나 구경을 합니다.


ㅅㄴㄹ


술 취하면 혀 고부라진 소리로 / 베사메 무초를 잘 부르던 여자가 / 겨드랑이에선 늘 리라꽃 향기가 나는 여자가 / 가끔 아들한테도 얻어터지는 여자가 / 눈두덩, 팔, 다리 이곳저곳 멍이 / 든 여자가 / 온종일 누워 얼굴에 계란을 굴 / 리는 여자가 / 부부싸움을 하고 홧김에 불을 지른 여자가 (라일락 그녀/21쪽)


행랑에 들창문이 줄줄이 붙어 있던 홍등가 2층 슬래브 건물, 그날 내가 만난 짝은 쇼를 하는 앳된 창녀였다 그녀는 우리들 앞에서 그곳으로 담배를 피우고 나팔을 불고 화살촉을 쏴 멀리 있는 색풍선을 맞혀 터뜨리고 동전을 원하는 숫자만큼 그곳에서 떨어뜨렸다. “세 개” 하면 세 개를 떨어뜨리고 “다섯 개” 하면 다섯 개를 떨어뜨렸다 마지막엔 그곳에 붓을 꽂아 이름을 써주었다 간직하고 있으면 세상에 이름을 떨칠 거라 했다 쇼가 끝나고 나는 그녀를 따라 쪽방으로 갔지만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대신 그녀는 몸을 만져도 된다며 제 옷 속에 내 손을 넣어주었다 몸이 뜨거웠다 씨앗이 흙과 어울릴 무렵이었다 군복 안주머니엔 삐뚤빼뚤 그녀가 온몸으로 써준 고영민, 내 이름 석 자가 있었다 (고영민/56쪽)


+


《구구》(고영민, 문학동네, 2015)


코에 호스를 꽂은 채 누워 있는

→ 코에 줄을 꽂은 채 누운

→ 코에 대롱을 꽂은 채 누운

12쪽


공중화장실에서 긴 복대를 풀어놓고

→ 바깥쉼터에서 긴 배띠를 풀어놓고

→ 열린뒷간에서 긴 배띠를 풀어놓고

13쪽


밀려오는 요의(尿意)처럼 누군가는

→ 밀려오는 오줌처럼 누구는

→ 오줌이 확 마려우며 누구는

13쪽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고

→ 부챗살처럼 흩어지고

16쪽


숲의 덤불 속으로 뛰어가 낙하지점을 가늠하여 숲덤불을 뒤적이기 시작하네

→ 숲덤불로 뛰어가 내림길을 가늠하여 뒤적이네

→ 숲덤불로 뛰어가 떨어지는 곳을 가늠하여 뒤적이네

18쪽


고양이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

→ 고양이가 아궁이로 들어가

19쪽


나무 아래를 천천히 걸었을

→ 나무 밑을 천천히 걸었을

→ 나무 곁을 천천히 걸었을

20쪽


펄펄 끓는 내 늙은 어머니에게로

→ 펄펄 끓는 늙은 어머니한테

→ 펄펄 끓는 늙은 울엄마한테

27쪽


기다림이 좋았던 시절

→ 기다리며 즐겁던 때

→ 기다리며 즐거운 날

29쪽


시선(視線)이 밖으로만 향해 있었다

→ 눈이 밖으로만 갔다

→ 밖만 바라보았다

→ 밖만 쳐다보았다

31쪽


화구(火口)가 열리고

→ 불길이 열리고

→ 불구멍이 열리고

33쪽


밥을 먹고 나간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밥을 먹고 나간 날이 그이 마지막 모습이다

42쪽


행랑에 들창문이 줄줄이 붙어 있던 홍등가

→ 곁채에 들닫이가 줄줄이 붙은 붉은골목

→ 밖채에 들닫이가 줄줄이 붙은 노닥골목

56쪽


꽃의 얼굴을 대신해 나를 맞는다

→ 꽃얼굴처럼 나를 맞는다

→ 꽃얼굴로 나를 맞는다

73쪽


저 분(盆)도 한때는 환한 뿌리를 품었을 것이다

→ 저 그릇도 한때는 환한 뿌리를 품었다

→ 저 동이도 한때는 환한 뿌리 품었겠지

80쪽


요즘 아내의 운동은 밤낮 저 라켓을 휘두르는 것이다

→ 요즘 곁님은 밤낮 저 채를 휘두르며 땀흘린다

→ 요즘 짝꿍은 밤낮 저 자루를 휘두르며 뛰논다

88쪽


하모니카를 불 수 없지

→ 바람가락을 불 수 없지

→ 숨가락을 불 수 없지

92쪽


커브를 틀면 도르르르 왼쪽으로, 브레이크를 밟으면 도르르르 앞으로 급히 불려간다

→ 굽이를 틀면 도르르르 왼쪽으로, 멈추면 도르르르 앞으로 훅 불려간다

→ 꺾으면 도르르르 왼쪽으로, 서면 도르르르 앞으로 얼른 불려간다

98쪽


화분을 화분이라고 읽게 될까

→ 그릇을 그릇이라고 읽을까

→ 꽃그릇을 꽃그릇이라 읽을까

100쪽


산후조리 하는 딸을 위해 먼 고향집에서

→ 몸을 돌보는 딸을 살펴 먼 시골집에서

→ 몸을 푸는 딸을 헤아려 먼 시골집에서

107쪽


배롱나무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갖고 있었을까

→ 배롱나무는 얼마나 많이 헤아릴까

→ 배롱나무는 얼마나 너른 마음일까

→ 배롱나무는 얼마나 갖가지로 느낄까

110쪽


삼동(三冬)을 나기 위해

→ 겨울을 나려고

→ 한겨울을 나려고

111쪽


푸른 잎사귀의 옷을 껴입었다

→ 푸른 잎사귀로 껴입었다

→ 푸른옷을 껴입었다

→ 푸른 잎사귀가 겹겹이다

111쪽


남의 옷을 벗겨가는 종자(種子)는 인간뿐이다

→ 남옷을 벗겨가는 씨는 사람뿐이다

→ 옷을 벗겨가는 씨앗는 사람뿐이다

111쪽


마른 풀 위로 새 풀이 돋아 있다

→ 마른풀 옆으로 풀이 새로 돋는다

→ 마른풀 곁에 풀이 새로 돋는다

11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