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흐르다 민음의 시 203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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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8.13.

노래책시렁 439


《살 흐르다》

 신달자

 민음사

 2014.2.28.



  까마귀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까마귀가 울어도 누가 우는지 모릅니다. 참새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눈앞에서 참새가 울어도 어느 새인지 모릅니다. 꾀꼬리를 만나거나 스친 적이 없으면, 여름에 꾀꼬리노래가 한창이어도 알아차리지 못 합니다. 지난날에는 임금·나리·글바치를 뺀 누구나 모든 새노래를 알았고, 모든 풀노래를 알았고, 모든 바람노래에 바다노래를 알았습니다. 글은 안 쓰고 안 읽었어도, 말에 깃든 마음과 삶을 읽으면서 살림과 사랑과 숲을 노래하는 나날이었어요. 《살 흐르다》를 읽으니, 오늘날 적잖은 분들이 ‘시를 쓰는 멋’을 부리려는 모습을 또렷하게 느낄 만합니다. 살아가는 하루를 고스란히 담기에 노래이고, 살림하는 마음을 그대로 옮기기에 말이고, 하루하고 마음을 차곡차곡 여미니 이야기입니다. 노래에 마음에 이야기는 먼발치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늘 누구나 스스로 자아올리는 숨빛인 말마디에는 늘 노래에 마음에 이야기가 도사립니다. 글만 주무르면서 이리 엮고 저리 붙이면 얼핏 ‘시처럼’ 보일 텐데, 이제는 ‘시처럼’이 아니라 ‘노래로’ 갈 일입니다. ‘마음으로’ 하루를 그릴 노릇입니다. ‘이야기를’ 글로 담아서 스스럼없이 펼 적에 서로서로 깨어날 수 있습니다.


ㅅㄴㄹ


거실에서는 소리의 입자들이 내리고 있다 / 살 흐르는 소리가 살 살 내리고 있다 / 30년 된 나무 의자도 모서리가 닳았다 / 300년 된 옛 책장은 온몸이 으깨어져 있다 / 그 살들 한마디 말없이 사라져 갔다 (살 흐르다/14쪽)


물컹거리는 자의식 / 그렇게 연한 것이 접시에 담겨 / 날 잡수시오 하는구나 / 아이구 저걸 어째! / 푹푹 숟가락이 들어가는 / 순연한 무저항의 저항 / 스스로 짓이겨지고 뭉개지는 / 저 여자 누구더라? (순두부/42쪽)


+


《살 흐르다》(신달자, 민음사, 2014)


그대를 만나면 조금은 환해질 것을 믿으며 말입니다

→ 그대를 만나면 조금 환하리라 믿으며 말입니다

5쪽


거실에서는 소리의 입자들이 내리고 있다

→ 마루에서는 소리씨앗이 내린다

→ 마루에서는 소리알이 내린다

14쪽


새벽까지 한 남자를 기다리던 엄마들의 늙은 딸들이 모여 앉아

→ 새벽까지 사내를 기다리던 엄마와 늙은 딸이 모여

→ 새벽까지 아빠를 기다리던 엄마와 늙은 딸이 앉아

21쪽


중의를 모았다

→ 뭇뜻을 모았다

→ 뜻을 모았다

21쪽


외로움은 온몸의 관절을 펴 수평선처럼 그 끝이 없었다

→ 외로워 온몸 마디를 펴니 물끝금처럼 끝이 업다

→ 외로워 온몸 뼈마디를 펴니 물금처럼 끝이 없다

28쪽


푹푹 숟가락이 들어가는 순연한 무저항의 저항

→ 푹푹 숟가락이 들어가는 그저 고요히 맞서는

→ 푹푹 숟가락이 들어가는 오직 가만히 맞받는

42쪽


어쩌다가 너무 따뜻하여 잊혀지지 않는 한마디 응원의 말

→ 어쩌다가 아주 따뜻하여 잊히지 않는 한마디

→ 어쩌다가 몹시 따뜻하여 잊을 수 없는 한마디

50쪽


모든 의식의 눈을 감고 한 점 찰나에 소멸하려는 그 순간

→ 모든 눈을 감고 한 자락 문득 사라지려는 그때

→ 모든 넋을 감고 한 끗 슬쩍 스러지려는 그즈음

57쪽


물소리만 낭자하다. 해서 몸이 성한 곳이 없다

→ 물소리만 넘친다. 그래서 몸이 성한 곳이 없다

→ 물소리만 흥건하다. 그래 몸이 성한 곳이 없다

66쪽


늑골이 푹 파인

→ 갈비가 푹 파인

67쪽


핸드백 속에 넣어 버리지만

→ 손구럭에 넣어 버리지만

→ 손짐에 넣어 버리지만

74쪽


적막은 잘 숙성된 맛이다

→ 고요는 무르익은 맛이다

75쪽


허나 무슨 허심을 들켰는지 우르르 끓어오르는 거품이 민망하여

→ 그러나 무슨 헛물을 들켰는지 우르르 끓어오르는 거품이 창피해

82쪽


오늘도 진주알을 찾기 위해 지구의 밑바닥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 이 불치의 겨울밤

→ 오슬도 바다구슬을 찾으러 푸른별 밑바닥을 샅샅이 뒤지는 이 깊은 겨울밤

→ 오슬도 찬슬을 찾으려고 파란별 밑바닥을 샅샅이 뒤지는 이 끝없는 겨울밤

9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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