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이응모임 (2024.4.20.)

― 부산 〈카프카의 밤〉



  얼결에 부산에서 배움모임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흐르는 말씨앗이었고, 이 말씨앗을 맞아들인 분하고 새록새록 생각을 지피자는 마음이 피어납니다. ‘이오덕 읽기 모임’을 어떻게 꾸릴 적에 즐겁고 뜻깊으면서 오래 펼 만할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ㅇ으로 말머리를 열자 싶더군요. “새롭게 있고, 찬찬히 읽고, 참하게 잇고, 느긋이 익히고”라고 하는, ‘이’가 밑동인 ‘있다·읽다·잇다·익다’ 넷을 하나로 여미는 자리를 꾸미기로 합니다.


  부산 〈카프카의 밤〉에서 열넉걸음으로 나아가려는 이응모임 첫걸음을 떼면서 여러모로 말씀을 여쭙니다. 우리는 ‘이오덕을 배우는 자리’이기보다는 ‘이오덕을 읽으면서 나를 읽는 자리’요, ‘이오덕이 남긴 글과 읽은 글’을 살피면서 ‘나라면 나답게 어떤 눈빛으로 바라볼까’ 하고 돌아보려고 합니다. ‘이오덕 섬기기’가 아니라 ‘사람을 보는 눈썰미’를 스스로 가꾸려는 작은걸음이기를 바라기에 열넉걸음으로 느슨하면서 천천히 나아가려는 뜻입니다.


  빗질은 오늘 하루만 잘 하면 되지 않아요. 날마다 머리카락을 골라야지요. 몸씻기는 오늘만 하면 끝이 아니에요. 더워서 땀을 듬뿍 흘렸으면 하루에 두벌 석벌 넉벌 씻을 만합니다. 아름책은 한벌 슥 훑고 끝낼 까닭이 없어요. 열벌 스무벌 되읽을 뿐 아니라, 두고두고 새겨읽으면서 스스로 빛납니다.


  서로서로 빛나면서 빗질과 마음씻기로 마주하는 마음일 수 있다면, 늘 서로 살피고 헤아리고 돌보는 눈길이 만나서 새롭고 즐거우리라 봅니다. 문득 어느 분이 여쭙니다. “여기 책집에 ‘-의’가 들어갔잖아요?” 쓰고 싶다면 쓸 일이지만, 새길을 찾고 싶다면 귀띔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카프카밤〉처럼 붙여쓰기를 할 만합니다. 둘째, 〈카프카와 밤〉처럼 다른 토씨를 붙일 만합니다. 셋째, 〈카프카한테 밤〉처럼 더 다르게 토씨를 붙여서 우리 마음을 밝힐 만합니다.


  영어로 가리키는 ‘스토킹·파파라치’는 “괴롭히면서 쳐다보다”를 뜻하기에, 서로 살리지 못 하고, 서로 고단합니다. 똑같은 ‘보다’라 하더라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사뭇 달라요. 우리는 ‘지켜보다’나 ‘살펴보다’나 ‘알아보다’를 할 수 있습니다. ‘둘레보다’나 ‘들여다보다’나 ‘찾아보다’를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서 마음을 틔울는지 짚으면 되어요.


  누구나 마음 가득 스스로 살리는 말씨앗을 심는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오늘부터 한 사람씩 알아가면서 기쁘게 마음씨앗을 돌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열 수 있나 싶던 모임을 스무 해 만에 부산에서 엽니다. 고맙습니다.


ㅅㄴㄹ


《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김선형 옮김, 문학동네, 2012.6.18.첫/2023.6.5.29벌)

《간병일기》(강희자, 카프카의밤, 2022.9.1.)

《나는 숲으로 물러난다》(야마오 산세이/최성현 옮김, 상추쌈, 2022.10.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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