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8.1.
숨은책 955
《예방정비 K2 소총》
편집부 엮음
육군본부
1985.7.1.
싸움터(군대)에서는 사람을 어떻게 빨리 많이 죽이느냐를 가르칩니다. 먼저 꽝꽝 쏘아서 거꾸러뜨리는 길을 가르치고, 이다음은 칼로 푹푹 쑤셔서 자빠뜨리는 길을 가르치며, 능금알만 한 쇠를 휙 던져서 와장창 찢어버리는 길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임짓’을 가르치고 길들이되, 모두 낯선 젊은 사내한테 천천히 들려주거나 차근차근 알려주는 이는 없었어요. 언제나 주먹다짐으로 윽박지르고 짓밟으면서 욱여넣습니다. ‘팜플렛트 45-112’로 나왔다는 《예방정비 K2 소총》 같은 꾸러미를 본 일이란 없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물려주는 말만 나돌았고, 쏘든 쑤시든 던지든, 또 주먹으로 맞붙어서 때려잡으라고 하는 모든 싸움길은 일본말씨입니다. ‘제식훈련’이라는 이름부터 일본말이고, 이 이름으로 시키는 몸짓은 일본에서 건너왔고, 이 시킴질에 쓰는 낱말도 일본말입니다. “병기는 우리의 생명이다. ※표 사항은 꼭 지켜야 한다.”고도 하는데, 남을 못 죽이면 내가 죽는 판이라고 뼛속까지 새겨 넣으려고 합니다. 곰곰이 보면 배움불굿(입시지옥)도 ‘나 혼자 살아남기’로 길들이는 짓입니다. 일터살이(회사생활)도 ‘나만 살아남기’일 테고요. 총칼이 춤추는 곳에는 ‘함께살기’도 ‘어울살림’도 없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