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꽃 -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의 끝나지 않은 미술 수업
이경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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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인문책시렁 359


《못다 핀 꽃》

 이경신

 휴머니스트

 2018.8.13.



  《못다 핀 꽃》(이경신, 휴머니스트, 2018)을 진작 읽고도 자리맡에 한참 놓았습니다. 글님이 이 꾸러미를 여미기까지 한참 삭이고 다독였듯, 이 이야기를 읽은 마음도 곰곰이 짚으면서 되새깁니다.


  일본에서는 ‘군함도’와 ‘사도광산’을 살림빛(세계유산)으로 올리고 싶어서 애썼고, 둘 가운데 ‘사도광산’은 살림빛으로 올린다고 합니다. 그곳으로 끌려가서 시달리다가 죽은 가녀린 넋은 일본도 우리나라도 못 본 척하거나 숨겼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는 돌밭(광산)으로 끌려간 가녀린 넋만 못 본 척하거나 숨기지 않아요. 싸울아비(군인)로 끌려간 숱한 사람을 못 본 척했고 숨겼으며, 때로는 내몰았습니다. 일본 나가사키하고 히로시마에 불벼락(핵폭탄)이 떨어졌을 적에 애꿎게 끌려간 조선사람이 얼마나 죽었는지 아직도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두 나라 모두 쉬쉬하거나 조용히 지나갈 뿐입니다.


  어느 하나만 슬그머니 눙치지 않습니다. 모든 곳에서 눙쳐요. 어느 하나만 빠뜨리지 않습니다. 모든 수수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등돌립니다.


  《못다 핀 꽃》은 “못다 핀 꽃”으로 오래오래 곪고 아프며 지친 여러 할머니가 스스로 붓을 쥐고서 이녁 삶을 담아내기까지 어떤 하루를 살았는지 들려줍니다. 우리 발자취를 잘 모르고, 할머니 발걸음도 잘 모르지만, 할머니하고 가까이 지내면서 우리 발자취를 되새기려던 이경신 님이 어떻게 다가섰는지 들려주고, 할머니가 어떻게 마음을 틔우면서 새길을 열려고 했는지 보여줍니다.


  ‘꽃할머니’는 ‘지는꽃’이면서 ‘못다 핀 꽃’이고, ‘새롭게 피는 꽃’입니다. 할머니라는 고개는 ‘꽃씨’로 남는 길이요, 이다음에 태어나서 자랄 어린이한테 “푸른숲을 이룰 작은씨”를 물려주는 삶입니다. 꽃할머니는 미움이나 주먹질이나 손가락질을 바라지 않습니다. 꽃할머니는 사랑과 어깨동무와 새길을 바랍니다. 두 나라 우두머리를 비롯해서 벼슬아치·글바치·붓바치 모두 지난날을 뉘우치면서 이제는 살림꽃을 어질면서 참하고 곱게 가꿀 수 있기를 바라요.


  우두머리나 벼슬아치만 꽃할머니를 모르쇠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꽃할머니를 모르쇠했습니다. 옆나라만 꽃할머니한테 등돌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부터 꽃할머니한테 등돌린 나날이 깁니다. 무엇보다도 “총칼을 거머쥔 싸울아비”가 있는 모든 나라에서는 순이가 노리개로 구르고, 돌이는 꼭두각시 노릇에 매입니다. 어떤 총칼로도 어깨동무를 못 해요. 살림을 짓는 호미 한 자루에, 살림을 담는 붓 한 자루를 왼손과 오른손에 하나씩 쥘 적에 비로소 살림을 열면서 손을 맞잡게 마련입니다.


  돈벌이(경제성장)에 바쁜 우두머리·벼슬아치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그동안 어떤 짓을 했고, 오늘 어떤 굴레를 들쓰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참사랑을 누가 어떻게 잊었는지 곱씹을 일입니다. 우리가 먼저 품고 풀어야, 이웃하고도 품고 풀 수 있어요. 그나저나 《못다 핀 꽃》을 읽노라면, ‘십분이해’ 같은 일본말씨가 자주 보이고, ‘개선장군’ 같은 싸움말씨도 자꾸 나옵니다. 글결을 좀 가다듬을 수는 없을까요? 총칼로 뭇나라를 윽박지르고 짓밟은 ‘싸움나라 말씨(군국주의 일본말씨)’를 그대로 둔 채 꽃할머니 이야기를 적으려고 한다면, 어쩐지 맞갖지 않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할머니, 이 두 처녀 이야기 좀 해주세요. 둘이 친구예요?” “아니, 둘 다 나지.” “형님, 그런데 왜 뒷모습이요?” 강덕경 할머니가 한마디 건넸다. “그냥 멀리 떠났으니까 그렇고, 집에 아직 안 들어갔으니까 이렇게 그렸지.” (127쪽)


그림이라고는 하나 일본 병사가 끌려간 처녀들을 발가벗기거나 욕보이는 장면을 다시 보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들은 또다시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급기야 전시에 참여했던 화가가 할머니들을 찾아와 사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고생하고 살아왔는데, 우리 할머니들을 어떻게 또다시 그렇게 욕보일 수 있나?” 할머니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할머니들을 욕보이려고 한 것이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래요. 왜 우리를 발가벗기고, 그게 욕보이는 거지 뭐예요?” (133쪽)


“우리를 도와주려고 그랬다는 것은 알지. 그래도 좀 심하게 한 것은 아직도 약간 창피해.” “어떻게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화가들의 그림이 진짜처럼 너무 독해 보여.” …… “그럼 할머니라면 그 문제를 어떻게 그리고 싶으세요?” “내가?” (135쪽)


할머니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금세 다시 밝은 얼굴이 되었다. “미술 선생, 그럼 이 그림의 제목을 ‘짓밟힌 꽃’이나 ‘못다 핀 꽃’으로 하면 어때?” “‘짓밟힌 꽃’은 다시 못 피지만 ‘못다 핀 꽃’은 다시 필 희망이 있으니 ‘못다 핀 꽃’이 어떨까요?” (197쪽)


+


미술 수업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으로 자리잡아 갔다

→ 그림마당은 하루하루 즐겁게 자리잡아 갔다

→ 그림자리는 어느새 조촐히 자리잡아 갔다

4쪽


강덕경 할머니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강덕경 할머니가 무척 고맙다

→ 강덕경 할머니 참으로 고맙습니다

7쪽


내가 할머니들을 처음 만난 것은

→ 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난 때는

11쪽


미술용품을 받아든 할머니들은 처음 갖게 된 물건에 대한 기쁨이나 호기심보다는

→ 붓종이를 받아든 할머니는 처음 받아서 기쁘거나 궁금하기보다는

→ 그림살림을 받아든 할머니는 처음 받아 기쁘거나 궁금하기보다는

26쪽


저마다 개선장군처럼 꽃을 한 아름씩 들고

→ 저마다 의젓하게 꽃을 한 아름씩 들고

→ 저마다 씩씩하게 꽃을 한 아름씩 들고

→ 저마다 기운차게 꽃을 한 아름씩 들고

54쪽


해일은 바닷속 어두운 심연을 헤집어 모든 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놓았다

→ 너울은 깊고 어두운 바다를 헤집어 모두 물낯으로 끌어올렸다

→ 벼락놀은 어둡고 깊은 바다를 헤집어 모두 물낯으로 올려놓았다

64쪽


자신들의 박복함 탓으로 돌리곤 했다

→ 스스로 변변찮았다고 탓하곤 했다

→ 스스로 볼품없었다고 탓하곤 했다

→ 스스로 서푼이었다고 탓하곤 했다

84쪽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기에

→ 이 마음을 잘 알았기에

→ 이 마음을 헤아렸기에

→ 이 마음을 느꼈기에

93쪽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를 통한 생물학적 탄생 이후 고향이라는 지리적 바탕 위에서 성장한다

→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가 낳고 보금자리에서 자란다

→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한테서 나고 둥지에서 자란다

100쪽


사람들에게 온몸을 바치는 닭의 희생에 측은지심을 느끼는 듯했다

→ 사람한테 온몸을 바치는 닭을 딱하게 느끼는 듯했다

→ 사람한테 온몸을 바치는 닭을 가엾게 느끼는 듯했다

110쪽


시간과 비용이 들고 할머니들이 다루기도 쉽지 않아 약식으로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 품과 돈이 들고 할머니가 다루기도 쉽지 않아 가볍게 하기로 했다

→ 짬과 돈이 들고 할머니가 다루기도 쉽지 않아 단출히 하기로 했다

177쪽


누누이 말씀드려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 거듭 여쭈어도 소귀에 글읽기였다

→ 다시금 말해도 소귀에 읽기였다

234쪽


50년이 흘렀는데도 잘못된 제국주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 쉰 해가 흘러도 마구잡이로 잘못 바라보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새삼 느낀다

→ 쉰 해가 흘러도 만무방으로 잘못 보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새삼 돌아본다

→ 쉰 해가 흘러도 마구잡이로 잘못 바라보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새삼 느꼈다

263쪽


69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 69살로 삶을 마쳤다

→ 69고개로 마쳤다

→ 69나이로 돌아가셨다

27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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