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2024.7.28. 피서와 뙤약볕
여름에는 신나게 더위를 누린다. 겨울에는 기쁘게 추위를 즐긴다. 봄가을에는 더위도 추위도 아닌 날씨를 새록새록 지켜본다.
여름에는 뙤약볕에 온몸을 맡긴다. 처음에는 얼핏 덥거나 땀이 돋는 듯싶지만, 이내 우리 몸은 여름이라는 날씨를 헤아리고 받아들인다. 더는 더위에 안 시달린다.
겨울에는 찬바람에 온몸을 맡긴다. 처음에는 얼핏 덜덜 떨거나 어는 듯싶어도, 이윽고 우리 몸은 겨울이라는 철을 살피고 맞아들인다. 더는 추위에 안 휘둘린다.
여름에는 해를 먹으며 일하거나 논 다음에, 냇물과 샘물로 싱그러이 땀을 씻어내면 넉넉하다. 겨울에는 눈바람을 잔뜩 먹으며 일하거나 논 다음에, 따뜻물로 빨래하고 집안일을 하면 포근하다.
여름이 왜 있을까? 겨울이 왜 있을까? 땡볕에 불볕에 이글이글 하루를 누릴 적에 온몸이 튼튼하면서 온마음이 맑기에 더위가 찾아든다. 칼추위와 얼음벼락에 오들오들 하루를 보낼 적에 온몸이 다시 깨어나면서 온마음이 밝기에 추위가 밀려든다.
더워야 여름이고, 추워야 겨울이다. 덥기에 기쁘고, 춥기에 반갑다.
나는 더위긋기(피서)를 안 한다. 더위를 고스란히 맞이한다. 나는 추위긋기도 안 한다. 추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1월에는 버선을 꿰지만, 2월이나 12월만 해도 버선 없이 맨발로 지내기 일쑤이다.
우리 집은 바람이(에어컨·선풍기)를 들이지 않는다. ‘바람이’가 아닌 ‘바람’이 흘러들도록 나무하고 풀을 품는다. 바람을 쐬고, 부채를 가볍게 팔랑인다. 바람을 쐬어야 바람을 읽으면서 사귄다. 햇볕을 쬐어야 해를 헤아리면서 사귄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