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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합니다

나는 노래한다. 나는 시를 안 쓴다. 나는 문학을 안 한다. 나는 등단을 안 한다. 나는 다른 시인을 안 만나고 문단 이너서클도 아웃서클도 다 멀리한다.

나는 놀이한다. 아이한테 놀이를 안 가르친다. 나는 그저 사람이니까 놀이를 하고, 놀이를 하니까 노래한다. 노을처럼 노래하고, 너울처럼 놀이한다.

나는 울다가 웃는다. 나는 우레처럼 울고, 우듬지에 둥지를 지어서 사랑으로 낳은 알을 품고 돌보아 활활 활개치는 한새처럼 울고 웃는다.

나는 마신다. 바람을, 빗물을, 샘물을, 냇물을, 골짝물을, 눈물을 마신다. 두 손을 모두어 한마음으로 살아가며 살 림할 길을 찾고 나누며 빛살을 마신다.

나는 걷는다. 책짐을 휘청휘청할 만큼 질끈 메고서 걷는다. 아기를 안고 업고서 걷다가 이제는 아이랑 나란히 수다꽃을 누리며 걷는데, 걷다가 자꾸 웃음이 새어나오다가 와하하 터진다.

나는 그린다. 별을 그린다. 눈을 감고서 셋쨋눈은 틔워서, 이 마음이 밭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꿈을 그린다.

나는 본다. 애벌레가 잎을 갉는 하루를 본다. 애벌레가 허물벗기를 하며 우는 몸짓을 본다. 이러다가 고치를 틀며 또 우는 모습을 본다. 이제 깊이 잠든 고치를 보고, 보름이 지나서 나비로 날개돋이를 한 너를 본다.

아. 너는 나비였구나. 난 애벌레인가? 책벌레인가? 아니면 밥벌레인가?

나는 낱말책을 쓴다. 나는 우리말꽃이라고 이름을 새로 붙인 국어사전을 쓴다. 나한테 이웃이 있다면, 내가 쓴 모든 책이, 알고 보면 다 다른 사전인 줄 눈치챘겠지.

사전이란, 잘 팔릴 책이 아닌, 제대로 읽혀서, 사전을 읽는 모든 이가 나비로 거듭나도록 징검다리를 놓는 오솔길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사전이 아직 없구나. 글을 쓰는 이웃도 잘 안 보이는구나. 돈을 벌고 이름을 벌고 힘을 벌려고 글을 쓰는 무리가 신문과 잡지와 문단과 학교와 정부와 온곳에 또아리를 틀고서 스스로 죽어가는구나.

나는 눈물을 거둔다. 여름밤에 잠든 아이 곁에 서서 살살 부채질을 하고 자장노래를 부른다.

나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안 쓰고, 늘 뙤약볕길을 천천히 걷는다. 나는 왼발 오른발 나란히 걷는다. 나는 왼손 오른손 고루 쓴다.

왼날개로만 나는 새는 없다. 오른날개로만 나는 새도 없다. 모든 아이는 온날개로 태어나는데, 둘레에서는 자꾸 아이들을 왼이나 오른으로 치달리도록 몰아세우네. 온나래로 태어난 아이들이 울다가 그만 다들 외날개로 바뀌어 아무도 못 날고 아파서 또 우네.

나는 외날개 아닌 온날개로 살림하는 이 가시밭길에서 멧딸기를 훑는 작은 이슬받이로 나아가면서, 벌레랑 새랑 숲짐승한테 한 톨씩 건네고,  아이들한테도 한 톨씩 건네는 하루를 짓는다.

이제 오늘을 새로 걸어가야겠다. 
ㅅㄴㄹ

#숲노래 #최종규 #우리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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