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169


《携帶用 萬字玉篇》

 편집부

 여문사

 1976.11.30.



  어린배움터 길잡이(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 책시렁에 있던 《携帶用 萬字玉篇》인데, 열 살 무렵에 마을 할아버지한테서 즈믄글씨(천자문)을 배우면서 이 작은 옥편을 제 책으로 삼았습니다. 어린이옷에 붙은 작은 주머니에 쏙 들어갔어요. 책이름 그대로 ‘갖고 다니는’ 책입니다. 어린이가 무슨 옥편을 갖고 다니느냐는 핀잔을 곧잘 들었지만, 즈믄글씨를 익힌 뒤에 새로 마주하는 한자가 있으면 잽싸게 뒤져서 다른 어른보다 먼저 알아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처음에는 30초쯤 걸리고, 이내 15초쯤 걸리고, 어느새 4∼5초면 찾아내다가, 나중에는, 2∼3초 만에 휘리릭 찾아냈습니다. 열네 살에 푸른배움터로 갈 적에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즈음에는 큰 옥편도 챙기는데, 주머니 옥편도 언제나 왼가슴 옷주머니에 깃들어 함께 다녔어요. 늘 챙기는 길동무 같은 작은책이라서, 동무한테서 얻은 꽃딱지를 겉에 붙입니다. ‘프라모델’ 꾸미기를 즐긴 터라, 동인천에 있는 프라모델집 이름딱지도 얻어서 나란히 붙입니다. 손때로 반질반질하고 종이가 낡아 가지만, 오늘도 자리맡에는 이 손바닥책을 올려놓습니다. 주머니책은 주머니에 안겨서 어느 곳이건 같이 다녔고, 하루를 나란히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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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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