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꽃삶 34 봄꽃과 보임꽃

― 오늘 쓸 말을 오늘 짓는



  우리나라에서 낱말책을 쓰고 엮는 일을 몇 사람쯤 할까요? 열 사람쯤 꼽을 수 있을까요? 낱말지기(사전편찬)를 오롯이 맡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우리는 늘 말을 할 뿐 아니라, 온갖 글을 읽거나 쓰는데, 막상 우리말과 우리글을 알맞게 다스리거나 다독이거나 달래는 일꾼은 너무 적어요.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일을 맡습니다만, 어느 갈래 어느 일이건 말글을 안 쓸 수 없습니다. 모든 곳은 저마다 다르되 ‘우리말·우리글’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 갈래 여러 말씨를 추스르는 일꾼을 나라(정부)에서도 고을(지자체)에서도 넉넉히 둘 뿐 아니라, 꾸준히 새롭게 배우는 기틀을 다질 노릇이지 싶습니다.


  저는 낱말지기라는 길을 꽤 오래 걸어갑니다. 앞으로도 이 길을 걸어갈 텐데, 이러다 보니 저한테 “이때에는 어떤 말을 지을 수 있어요?”라든지 “이런 영어나 일본 한자말은 어떻게 풀어야 어울릴까요?” 하고 묻는 이웃이 많습니다. 제가 어떤 영어나 일본 한자말을 굳이 안 고치거나 안 풀어내면서 그냥 쓰면 “어라? 낱말책을 엮는 분이 그러면 되나요? 다른 사람은 안 고치고 안 풀어도 낱말지기는 다 고치고 다 풀어야지요!” 하고 핀잔하거나 나무랍니다.


  여러모로 보면, 낱말지기는 늘 핀잔과 나무람과 꾸지람으로 자라는 일꾼입니다. 아직 이 말을 못 고쳤느냐는 핀잔을 듣습니다. 여태 새말을 못 지었느냐는 나무람을 듣습니다. 언제쯤 풀어내겠느냐고 꾸지람을 들어요. 이런 핀잔과 저런 나무람과 그런 꾸지람은 밑거름입니다. 고마이 북돋우는 말빛이요 말씨라고 느낍니다.


  낱말책을 엮고 쓰려면 새책과 헌책을 두루 읽고 헤아립니다. 오늘 널리 쓰는 말씨가 담긴 새책도 읽고, 예전에 널리 쓰던 말결을 담은 헌책도 읽습니다. 언제나 책집마실을 다니는데, 책집에서 책만 사기보다는 ‘책집이 살아가는 자취도 남기자’는 마음으로 찰칵찰칵 찍기도 하고, 이렇게 찍은 그림을 펼쳐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냥그냥 ‘사진 전시회’를 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마을책집 사진 전시회’를 연다고 밝히면 새삼스레 꾸지람말을 들어요. “아니, 여보셔요, 왜 ‘사진’과 ‘전시회’라는 한자말은 그냥 두나요? 그대는 새말을 지어서 쓰셔야지요?” 하고 콕 집어요.


 사진 전시회 → 사진잔치 / 사진마당


  한때는 ‘전시회’를 ‘잔치’나 ‘마당’으로 가다듬었습니다. ‘사진’이라는 한자말은 ‘빛그림’으로 풀어낸 예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빛그림잔치’나 ‘빛그림마당’쯤일 테지요. 이렇게도 쓸 만하지만, 어쩐지 아쉽고, 더 짚을 수 있으리라 여겨요.


 빛그림 곁에 빛꽃


  1980∼90년 즈음에 ‘빛그림’이라는 낱말을 지은 분이 있는데, 얼마 못 쓰고 잠들었어요. 이 낱말을 잘 여미었다고는 느끼지만, 석글씨라서 안 썼나 싶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곰곰이 돌아본 끝에 ‘빛꽃’처럼 두글씨로 줄일 만하다고 느꼈습니다.


  빛으로 담은 그림이기도 하겠으나, 빛으로 담은 꽃이라고 할 적에 한결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여느때에는 수수하게 ‘찰칵’이라 하면 어울립니다. 그리고 ‘담다·찍다·옮기다·새기다·얹다·놓다·두다·그리다’로 나타낼 수 있어요.


 봄마당. 보임마당. 봄마루. 보임마루.


  펼쳐서 보이는 일이라면 ‘보임마당·보임마루’처럼 나타낼 만합니다. 이 말씨를 살짝 줄여서 ‘봄마당·봄마루’으로 나타낼 수 있고요. 겨울이 저물고서 찾아오는 봄이기에 봄마당이기도 하고, 봄이라는 철은 “새롭게 보는” 때이기도 한 터라, ‘전시회’라는 일본 한자말은 ‘봄마당’이며 ‘봄잔치’이며 ‘봄터’이며 ‘봄자리’로 살며시 담아도 어울릴 수 있어요.


 봄꽃


  그리고 더욱 확 줄여서 ‘봄꽃’이나 ‘보임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펼쳐서 보이기에 ‘보임꽃’입니다. 펼친 자리에서 너도 나도 함께 보니까 ‘봄꽃’입니다. 부드럽게 녹이면서 깨어나는 봄꽃처럼, 글도 그림도 빛꽃도 어느 자리에 펼칠 적에는 새롭게 찾아오는 철처럼 ‘봄꽃’으로 나타낼 만합니다.


  이리하여 요즈음은 “이제 새롭게 봄꽃을 폅니다. 나들이 오셔요.” 하고 여쭈어요. 서울 광진구 능동에 있는 보임터인 〈갤러리 사진적〉에서 2024년 7월 한 달 동안 ‘헌책집 봄꽃’을 펼칩니다. 7월은 한여름이지만, 이 여름에 새록새록 봄꽃을 누리는 나들이를 즐겨 보시기를 바라요.


― 숲노래 봄꽃

이름 : 책집에 갑니다

곳 : 서울 광진구 능동 〈갤러리 사진적〉 + 〈문화온도 씨도씨〉

때 : 2024.7.3.∼8.4.



펼친 사진이 마음에 들면,

이 자리에서 곧장 사가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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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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