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잇는 사이 (2021.12.6.)
― 천안 〈뿌리서점〉
대전을 거쳐서 천안으로 왔습니다. 대전에서 잔뜩 장만해서 묵직한 책꾸러미를 이고 집니다. 가볍게 다녀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오늘 만난 책은 밤에 느긋이 읽고서 이튿날 부친다거나 그대로 고흥까지 짊어지고서 돌아가려 합니다.
책은 시골집에서 셈틀로 시킬 수 있습니다. 책은 스스로 짊어질 만큼 사들여서 읽어낼 만큼 곁에 둘 수 있습니다. 누리책(전자책)으로 들출 수 있다지만, 제가 두고두고 되읽고픈 책은 여태 누리책으로 나온 적이 없어요. 무엇보다도 먼 뒷날 아이들이 물려받을 꾸러미를 차근차근 건사하고 싶습니다.
칙폭이에서 내려 천안 〈뿌리서점〉으로 걸어갑니다. 첫겨울 찬바람이 불지만 책짐을 잔뜩 이고 지는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립니다. 새로 들어서는 책집 한켠에 짐을 부리고서 “다시 새롭게” 책마실을 누립니다. 천안에 있는 헌책집에서는 오직 천안에서 읽힌 혼책(비매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천안이웃이 여느때에 살핀 책을 가만히 돌아보기도 합니다.
큰책집에서는 이름난 책이 돋보이지만, 작은책집에서는 알찬 책이 돋보입니다. 큰책집에서는 이름난 책을 수북하게 쟁여서 팔아치우지만, 작은책집에서는 마을이웃이 눈여겨볼 알찬 책을 주섬주섬 갖춥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둘레에서 다시금 “왜 굳이 책짐을 들처메고서 책집마실을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대단한 책이 없고, 대단한 사람이 없고, 대단한 일이 없어요. 제가 여미는 낱말책에는 ‘대단한 말’이 아닌 ‘누구나 삶자리에서 수수하게 쓰는 흔한 말’을 어린이부터 즐겁고 수월히 익히도록 담아요. 그러니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서 두 손으로 찬찬히 읽는 책집마실을 합니다.”
으레 ‘외국’이라는 한자말을 쓰지만, 저로서는 ‘바깥나라’가 아닌 ‘이웃나라’로 느낍니다. ‘이웃나라·이웃말’하고 ‘우리나라·우리말’이 어깨동무할 길을 헤아려 봅니다. 서로 이웃일꾼이요, 이웃책꾼입니다. 누구나 마음을 사랑으로 틔울 적에는 새롭게 이야기를 펴면서 “잇는 길”을 깨닫습니다.
먼저 이웃으로 서기에, 어느새 동그랗게 돌아보면서 도울 줄 아는 ‘동무’로 사귀고, 두런두런 이야기로 온누리를 둘러보는 마음을 가꾸기에 ‘두레’를 이뤄요.
멋진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 = 얼찬이 = 어진 빛을 씨앗으로 품은 일꾼’일 테니, 이야기와 이웃과 두레와 동무가 얽힌 실타래를 살뜰히 풀어내면서 새롭게 기쁘게 잇는 눈빛을 나누겠지요. 오늘 이곳에서 더 만난 책을 반갑게 되읽으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자, 마지막으로 홍성까지 건너가서 잠자리에 들자!
《저 들꽃들이 피어 있는》(안수환, 문학과지성사, 1987.10.5.)
- ‘第十會 책의날 記念’
- 글쓴이 한자 손글씨
《한문 가정교사》(이순선, 길음사, 1980.6.10.)
- 순천농업학교 마치고 국학대학 중퇴, 순천·광양 농림중고등학교에서 일하다가 서울로 가서 지낸
《안개주의보》(김하늬, 호남문화사, 1980.3.25.)
- 1957∼1999 광주시 불로동 111번지
《부처님의 자비로운 목소리》(山田無文 글/현재훈 옮김, 일월서각, 1984.8.15.)
《헤겔의 정치사상》(슬로모 아비네리 글/김장권 옮김, 한벗, 1981.7.1.)
《오늘의 産業 디자인》(김희덕 엮음, 한국디자인포장센터, 1979.6.10.)
《혁명적 세계관과 청년》(금성청년출판사 엮음, 도서출판 광주, 1989.3.1.)
《젊은 知性人들에게》(유진오, 신암문화사, 1980.7.30.)
《수도생활》(남자수도회연합회·여자수도회연합회, 분도출판사, 1969.7.10.)
《정신문화 12호》(정재각 엮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2.4.15.)
《레닌의 농업이론》(井野隆一 글/편집부 옮김, 미래사, 1986.7.30.)
《바로보는 우리 역사 2》(구로역사연구소 엮음, 거름, 1990.2.20.)
《우리들의 애송시》(편집부 엮음, 복자여자고등학교, 1998.10.10.)
《침엽수 지대》(김명수, 창작과비평사, 1991.11.25.)
《나비야 나비야》(유승우, 심상사, 1979.11.15.)
- 강동도서관 빌린 자국 없음
《이태리 포플러 숲길을 걸으면》(손광세, 아동문예사, 1991.5.20.)
《젊은 知性人들에게》(유진오 글, 신암문화사, 1980.7.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