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4.5.2. ‘나팔’ 말밑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몇 해가 걸렸는지 모르겠으나, ‘나팔’ 말밑을 풀었습니다. ‘나팔·나발’을 굳이 ‘喇叭’이라는 한자에 꿰어맞추려는 분이 있으나, 우리말 ‘나풀거리다·나불거리다·너풀거리다·너불거리다’를 비롯해서 ‘나부대다·나부끼다’에 ‘나비·너비·날다·너울’을 두루 짚어 본다면, 수수한 사람들 삶자리에서 가만히 태어난 이름인 줄 엿볼 만합니다.
옛글에 한자로 적혔으니 한자말일 턱이 없습니다. 옛글을 남긴 이들은 ‘말소리’만 따서 한자로 옮기기 일쑤였습니다. 이 얼거리를 안 읽고서 덥석 한자를 말밑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오래오래 써 온 말씨에 깃든 살림살이와 숨결을 몽땅 잊거나 잃을 수 있습니다. 한자로 남은 옛글이 옛말을 모두 안 담습니다. 1100년이나 220년에 어떤 말소리로 이야기를 폈는지 남긴 글은 하나도 없는데, 글만 부여잡다가는 말빛을 놓칩니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말밑 꾸러미》 넉벌손질로 하루가 흐릅니다. 차근차근 손질하니 끝이 나겠지요. 얼핏 끝없어 보이는 일을 하다가, 집안일도 하고 바깥일도 보고, 밥도 차리고, 빨래도 하고, 뽕꽃도 훑고, 후박꽃내음도 맡고, 낫을 갈고서 풀을 베고, 등허리를 펴고, 두바퀴를 달려서 나래터(우체국)에 다녀오고, 이러다 보면 “오늘도 마치지는 못 하는구나.” 하고 느끼지만, “이튿날 새로 기운을 내자”고 다시 생각합니다.
어린배움터에 들어가서 신나게 뛰놀며 이모저모 배우던 어느 날, ‘나발·나팔’이 한자라고 가르치는 길잡이를 만나서, “설마! 아닐 텐데!” 하고 느꼈지만, 어른 앞에서 이런 말소리를 섣불리 낼 수 없었습니다. 곰곰이 헤아리면, 거의 마흔 해 만에 수수께끼를 풀어낸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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