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나는 제비 (2024.4.23.)
― 서울 〈나무 곁에 서서〉
고흥버스나루에는 제비집이 여럿 있습니다. 해마다 숱한 제비가 이곳으로 돌아와서 둥지를 손질해서 알을 낳고 새끼를 돌봐요. 시골이라지만 버스가 꾸준히 드나드는데, 제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가볍게 날갯짓입니다. 그런데 지난겨울에 누가 제비집을 모두 헐었습니다. 꼬박꼬박 찾아와서 노래를 베푸는 제비를 시골아이한테 물려줄 마음이 아닌, 제비똥이 싫다거나 ‘감시카메라’에 집을 지어서 성가시다는 꼰대라고 하겠습니다.
고흥 곳곳을 보면, ‘감시카메라’에 꽤 둥지를 틀어요. 왜 그곳일까 하고 갸웃해 보면, ‘처마’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은 ‘감시카메라’가 마치 처마 같아요.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내려 아홉길(9호선)로 갈아탑니다. 양천향교나루에서 내려 해바라기를 하려니 제비 둘이 휙 날아갑니다. 올해에도 서울제비를 봅니다. 서울에도 제비가 돌아오는데, 아마 모르는 분이 훨씬 많겠지요.
서울제비가 궁금하다면 〈나무 곁에 서서〉를 찾아갈 일입니다. 이곳에서 책 두엇쯤 장만하고서 “그런데, 제비가 어디 있나요? 알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쭤 보셔요. 매캐하고 시끄럽고 어지러운 서울 한복판이어도, 곳곳에 들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면서 애벌레가 잎을 갉고서 나비로 깨어납니다. 하늘이 뿌연 서울에도 거미가 살고, 제비는 예전에 대면 퍽 버거울 만하지만 “아직 서울을 버릴 수 없다구!” 하는 마음으로 씩씩합니다.
서울로 오는 길에 《서리북》이라는 책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 책을 엮고 쓴 분들은 ‘낡은 책글(서평)을 넘겠다’고 외치지만, 막상 《서리북》에 실린 글을 읽자면 “또다른 고인물로 또다른 글담을 세우는 굴레”인 듯싶더군요. 왜 ‘느낌글’이 아닌 ‘리뷰’를 쓰나요? 왜 ‘책’이 아닌 ‘북’을 쥐나요? 어린이와 푸름이가 다가설 만한 말결로 다독이는 글을 쓰기가 그토록 어려울까요?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살피기가 그처럼 힘들까요?
‘교수·비평가’란 이름이 나쁘지는 않지만, 글담(문자권력)에 갇힙니다. 오늘 마실하는 〈나무 곁에 서서〉는 “수수한 아줌마와 살림꾼이라는 눈으로 책을 살피고 풀꽃과 숲과 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여민다고 느낍니다. 아줌마는 아줌마로서, 아저씨는 아저씨로서, 젊은이는 젊은이로서, 할매 할배는 할매 할배로서, 저마다 다르면서 나란한 마음으로 어깨동무할 적에, 책도 마을도 살림도 가꾸는 빛씨를 심을 만하리라 봅니다. 이제는 서울과 시골이 손을 맞잡고서 함께 새길을 찾는 이야기를 일굴 노릇이라고 느껴요.
ㅅㄴㄹ
《내가 잘하는 건 뭘까》(구스노키 시게노리 글·이시이 기요타카 그림/김보나 옮김, 북뱅크, 2020.4.10.첫/2020.6.15.2벌)
#くすのきしげのり #石井聖岳 #ぼくはなきました (나는 울었습니다)
《딸기 따러 가자》(정은귀, 마음산책, 2022.4.20.첫/2022.12.10.2벌)
《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데이비드 조지 해스컬/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2024.4.24.)
#ThirteenWaysToSmellaTree #DavidGeorgeHaskell
《강서추억탐구소설클럽》(김유이와 여섯 사람, 에픽로그, 2023.9.9.첫/2023.9.18.2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