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2024.4.20.
홍세화 똘레랑스 : 1999년 5월에, 홍세화 님이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을 냈다고 〈한겨레〉에 알림글이 떴고, 홍세화 님이 한창 〈한겨레〉에 글을 실었기에 꼬박꼬박 챙겨 읽었고 책도 사읽었다. 그무렵 나는 서울 이문동에서 ‘나름이(신문배달노동자)’로 일했다. 신문사 지국장님은 어느 날 나를 부른다. “야, 너 홍세화 좋아하냐?” “네? 글쎄요. 논설위원 김종철 님이라면 모르지만, 홍세화 씨 글은 영 시답잖은데요.” “그런데 왜 그 사람 책은 사서 읽냐?” “우리가 일하는 〈한겨레〉에 글을 쓰니까 읽어 봤지요.” “뭐야? 안 좋아해? 그럼 취소할까?” “뭘요?” “아니, 네가 좋아할 듯해서 자리를 너한테 주려고.” “무슨 자리요?” “한겨레신문 주주를 위한 강연회에 홍세화 씨가 나오는데, 나는 못 가는데, 내 자리를 너한테 주려고.” “음…….” “가 봐. 좋은 공부가 될 거야.” 신문사 지국장님 얘기를 듣고서 열흘 즈음 생각에 잠기면서 새벽마다 새뜸을 돌렸다. 그 자리에 가는 사람 가운데 ‘고졸’이기도 하고 ‘한겨레신문 배달노동자’라는 이름도 있어서, 나는 홍세화 씨한테 궁금한 말을 물어볼 수 있다고 했기에, 내가 그분한테 뭘 물어볼 수 있는 쪽틈인 1∼2분 사이에 무엇을 물어보고 따질까 하고 온갖 말을 추스르고 가다듬었다. 그리고 ‘홍세화 특별강의’가 있는 그날, 서울 공덕동 〈한겨레〉 일터로 갔고, 얼추 두 시간에 이르는 ‘혼말(혼자 들려주는 말)’을 꾹꾹 참아내듯 듣고서 홍세화 씨한테 물어보았다. “저는 이문동에서 〈한겨레〉를 돌리는 딸배입니다. ‘딸배’란 ‘신문배달부’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홍세화 씨는 프랑스에서 ‘택시운전사’라고 하셨지만, 홍세화 씨가 쓴 글과 책을 읽어 보기로는 도무지 ‘택시운전사’ 같지 않고, 너무 배운 티가 나는 지식인하고 똑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한겨레 신문지국뿐 아니라 다른 한겨레 신문지국에서 일하는 딸배도 대학생이나 대학교·대학원을 마친 사람이 많고, 한겨레 딸배는 〈한겨레〉를 꼬박꼬박 챙겨 읽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신문, 이를테면 ㅈㅈㄷ 딸배는 거의 고졸이나 중졸이나 무학자이고, 그분들은 ㅈㅈㄷ을 돌려도 신문을 아예 안 읽다시피 하고, 못 읽습니다. 그분들은 스포츠신문만 읽습니다. ㅈㅈㄷ을 돌리는 딸배이지만 막상 ㅈㅈㄷ이 무슨 목소리를 내는지 모릅니다. 제가 여쭙고 싶은 말이란, 홍세화 님이 ‘똘레랑스 똘레랑스’ 하시는데, 한겨레 딸배나 독자는 알아들을지라도 ㅈㅈㄷ 딸배를 비롯해서 다른 이웃은 못 알아들을 말입니다. 홍세화 님이 쓰는 글이 대단히 먹물스럽습니다. 왜 이렇게 글을 어렵게 쓰십니까? 중·고등학교만 마친 사람도 우리 삶터를 읽어낼 수 있는 줄거리를 담아서 쉽게 쓰셔야 하지 않습니까? 택시노동자였다면 택시노동자로서, 또 〈한겨레〉에 글을 쓰신다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말을 가려서 써야 하지 않습니까? 여기는 프랑스도 아닌 한국인데 왜 프랑스말을 씁니까? 적어도 한자말로는 ‘관용’이고, 우리말로는 ‘너그럽다’인데, 우리말 ‘너그럽다’를 쓸 생각은 없습니까?” 아마 1분 30초를 들여서 이 말을 쏜살처럼 얼른 외웠는데, 홍세화 씨는 ‘똘레랑스’는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고, ‘우리가 배울 프랑스 문화’라는 대꾸로 어영부영 마쳤다. 너무 어이없어서 얼굴이 화끈했고, 서울 이문동 신문사 지국으로 돌아온 저녁에도 그저 씩씩거렸다. 신문사 지국장님이 묻는다. “야, 너 왜 그래? 뭔 일 있어?” “아뇨. 앞으로는 홍세화 씨 글은 못 읽겠어요.” “왜?” “그분은 우리 옆이 아니라 저 하늘 높이 계시더군요.” 이날 홍세화 특별강의 자리에 다녀온 이야기를 신문사 지국장님한테 들려주었다. “그래? 그랬냐? 허, 그러냐? 그렇구나. 사람은 글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겠구나. 미안하다. 괜히 너한테 거기 가라고 했구나.” “아닙니다. 저한테 그 자리에 가라고 해주셨기 때문에, 글만 읽어서는 몰랐을 속모습을 보았습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배웠습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고,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오늘 아주 눈물겹게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
흙으로 돌아간 홍세화 님이 고이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흙이라는 품에 안기는 넋은, 풀벌레랑 이웃하면서 나무랑 속삭이는 푸른말과 숲말로 하루를 노래하시기를 바란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