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뒷통수 2024.3.9.흙.



앞에 가는 뒷통수만 바라본다면, 앞에서 가는 대로 쪼르르 따라서 가겠지. 앞줄을 따라가면 네가 스스로 둘레를 보거나 길을 찾을 일이 없어. 넌 뒷통수를 안 놓치면 될 테지. 앞에서 따라갈 뒷통수가 없으면, 넌 스스로 둘레를 보고 길을 찾아야 해. 낯설거나 몰라서 헤맬 수 있을 텐데, 자꾸 헤매다 보면 가까운 둘레부터 조금씩 알아볼 만해. 곁자리부터 눈에 익히다가 문득 하늘을 보고 땅바닥을 보겠지. 네 앞을 이끄는 것이 없기에, 네 앞을 가리거나 막는 것도 없어. 스스로 찾아나서는 길이기에, 하늘과 땅과 둘레를 모조리 살핀단다. 이러면서 네 마음을 깊고 넓게 들여다보지. 걱정하거나 설레는 마음도, 슬프거나 싫은 마음도, 멍하거나 즐거운 마음도 다 느껴서 맞아들여. 어느 뒷통수만 쳐다볼 적에는,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을 수 있어. 헤매거나 놓칠 일이 없다고 여길 수 있어. 그런데 ‘우두머리·길잡이’ 뒷통수를 쳐다보느라, 정작 ‘너다운(나다운) 빛’을 못 보거나 잊는단다. 앞잡이(길앞잡이)를 따라가느라 네 마음을 등지고 네 눈빛이 사라져. 가는 길을 멈추고서 구름을 보겠니? 하던 일을 멈추고서 새로 돋은 들꽃을 보겠니? 넌 어디를 보며 하루를 살아가니? 넌 곁에 누가 있니? 사람들로 빽빽한 서울은 다들 서로 뒷통수만 쳐다보면서 말을 잊고 이야기를 잃다가 마음이 사라져. 빽빽하게 채워 넣은 틀에는 아무 틈이 없어서 다들 죽어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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