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코토 진료소 1
야마다 다카토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2.24.

그들은 왜 뛰쳐나갈까


《Dr.코토 진료소 1》

 타카토시 야마다

 문희 옮김

 대원씨아이

 2001.5.22.



  《Dr.코토 진료소 1》(타카토시 야마다/문희 옮김, 대원씨아이, 2001)를 가만히 읽습니다. 스물다섯걸음까지 나온 이 그림꽃은 빠른배로도 한참 달려야 닿는 섬에 깃든 작은 돌봄터에서 바라보는 섬살림을 들려줍니다. 줄거리는 ‘시골돌봄터’에서 겪고 부대끼는 일이되, 이야기는 ‘시골이 왜 빠르게 무너지는가’를 짚어요.


  일본에서는 2000년부터 나왔고, 2010년에 스물다섯걸음까지 그리고서 매듭을 아직 못 짓습니다. 한글판은 2001년부터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2001년 무렵에 ‘시골을 살리는 길’을 헤아리는 사람이 아주 드물었어요. 어느 모로 보면 ‘없었다’고도 할 만합니다.


  2020년 언저리에 이르고서야 ‘사라지는 마을(지방인구소멸)’을 둘러싼 고름을 풀려고 큰돈을 쏟아붓습니다만, 큰돈을 쏟아붓기 앞서 시골을 찬찬히 보려는 눈길이나 몸짓부터 드물었어요. 요 여러 해를 돌아보면, 나라에서도 고을에서도 ‘마을이 안 사라지도록’ 엄청나게 돈을 들인 듯하지만,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틀림없이 어마어마하게 돈을 쓰는 나라요 고을이되, 막상 시골이나 작은고장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작은 보금자리를 안 들여다본다고 느껴요.


  무엇보다도 모든 배움터가 배움불굿입니다. 서울곁뿐 아니라 부산과 광주도, 시골에서도, 온통 ‘서울로!’를 외쳐요. 시골에서 나고자라서 푸른배움터를 마치는 스무 살 즈음에 시골에서 즐거이 일자리를 찾아서 자리잡는 길을 펴는 고을은 아직 한 곳조차 없습니다. 또한 시골에 작은집을 마련해서 조그맣게 밭살림을 일구는 사람들을 돕거나 뒷배하는 고을마저 없어요.


  돈을 쳐다보면서 아기를 낳는 나라라면, 그저 죽어가는 수렁입니다. 돈이 없기에 아기를 안 낳지 않습니다.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안 배우고, 사랑하고 먼 메마른 터전이기 때문에 아기를 안 낳습니다. ‘성교육’이 아닌 ‘사랑길’을 들려주고 보여주고 밝히면서, 어릴 적부터 참살림을 익히도록 북돋울 적에 비로소 순이돌이가 어깨동무를 하는 작은꽃길을 열 만합니다.


  《Dr.코토 진료소》는 돌봄터 한 곳에서 심는 조그마한 씨앗 한 톨이 어떻게 자라나면서 어떻게 마을을 바꾸고, 어떻게 시골이 거듭나고, 어떻게 젊은이가 사랑을 꿈꾸고, 어떻게 아기가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어떻게 사람과 들숲바다가 어우러지고, 어떻게 꼰대 아닌 어른으로 살림을 짓고, 어떻게 막말 아닌 살림말로 마음을 나누고, 어떻게 돌봄이 없이도 튼튼하게 하루를 살아갈 만한가 하는 길을 넌지시 들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그림꽃은 “외딴 섬마을에 돌봄터가 꼭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닌, “작은 시골을 비롯해 커다란 서울이 어떻게 키를 틀어야 스스로 서고 빛나는가”를 곰곰이 짚고 묻고 되새기면서 함께 풀어가자고 손을 내미는 몸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아이들이 ‘외대’를 가려고 하는지 민낯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큰돈 벌고 이름값 날리는 일자리를 거머쥐려고 의대를 노립니다. 아이들을 배움불굿으로 밀어넣는 ‘어른 아닌 꼰대’들이 아이들을 망가뜨리는 판입니다. 똑똑하고 참하고 착한 아이들이 시골에서 조촐히 보금자리를 짓고서 조그맣게 밭살림을 누리는 하루를 그리면서 아기를 낳아 스스로 돌보는 길을 이야기하고 알려주거나 가르치는 길잡이가 이 나라에는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아이들을 서울로 안 보내는, 아니 아이들이 시골에서 마음껏 꿈꾸고 사랑하면서 노래하는 터전을 푸르게 가꾸면 됩니다. 이 길을 갈 적에 순이돌이가 아름답게 짝을 맺을 테고, 아름짝 두 사람은 아기를 기쁘게 낳아서 즐겁게 돌볼 테지요. 나라나 고을은 이런 사람들 곁에서 조금만 거들면 돼요. 밑살림돈(기본소득)은 이런 데에 쓸 일입니다.


  치달려야 하는 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아기를 안 낳고 싶어요. 싸울아비가 득시글거리고, 총칼을 자꾸 만들면서 툭탁거리는 나라에서는 참말로 아기를 낳고 싶은 사람이 없을 만합니다. 순이돌이가 서로 다투고 갈라치기를 하는 나라에서 누가 아기를 낳고 싶겠습니까. 우리말 ‘머슴’하고 ‘머스마·머스매’는 말밑이 같습니다. ‘사내 = 머슴 = 일꾼’이라는 뜻입니다. 돈을 버는 바깥일을 하는 사내가 아닌, 집 안팎에서 기꺼이 온일을 맡아서 꾸려 나가는 몫이 사내다움입니다. 힘을 뽐내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바보짓은 사내다움이 아닌, 얼뜬짓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머슴·머스마’하고 ‘멋’도 말밑이 같아요. 씩씩하고 즐겁게 온갖 일거리를 도맡는 사내란 ‘멋스러운’ 살림길이라는 속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멋을 잊고 삶을 등지고 사랑을 모르는 채 헛발질을 일삼는다고 할 만합니다.


  돌봄터가 없어도 호젓하고 튼튼하게 살림하는 보금자리입니다. 서로서로 돌봄이로 어울리면 넉넉합니다. 집을 돌보면 마을을 저절로 돌보고, 들숲바다도 나란히 돌보게 마련입니다. 한집살림부터 사랑으로 돌보기에, 아이도 어른도 철이 들면서 스스로 삶을 짓는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씩 바꾸어 가기를 바랍니다. 힘들면 힘든 하루를 즐겁게, 즐거우면 즐거운 하루를 그저 즐겁게, 차곡차곡 받아안으면서 모두 너그러이 품는 하루라면 시나브로 사랑이 싹틉니다.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들은 왜 뛰쳐나갈까요? 돌봄이는 왜 돌봄터를 뛰쳐나갈까요? 아이들은 왜 시골을 뛰쳐나갈까요? 부디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요. 작은 집과 작은 마을과 작은 시골로 걸어서 돌아가요.


ㅅㄴㄹ


#Drコト診療所 #山田貴敏


“선생님, 뭔가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이 섬 주민들은 심하게 아프면 6시간이 걸려도 배를 타고 육지의 병원에 가요. 이런 허름한 진료소에서 치료받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이죠.” (26쪽)


“호시노 간호사, 그렇게 겁에 질린 얼굴을 하면 안 돼요. 의식이 있는 환자는 간호사의 웃는 얼굴을 보고 마음을 안정시킵니다.” (51쪽)


“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됐어.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못 본 채 내버려두는 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94쪽)


“선생, 난 무식해서 어려운 건 잘 모르오. 하지만, 이것만은 언제나 아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친구를 배신해선 안 된다고.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한번 믿은 친구는 끝까지 믿어야 한다고 말하지. 선생님, 당신은 우리 아들을 살려낸 생명의 은인이요. 당신을 믿는 마음은 일생 변하지 않을 거요.” (103쪽)


“남자들은 헌혈 한다니까 무서워서 도망간 모양인데, 여자들은 강하니까 무서울 게 없어요.” (110쪽)


‘힘내라, 아가야! 엄마가 널 얼마나 힘들게 낳았는데!’ (19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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