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의 미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68
황혜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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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2.17.

노래책시렁 404

《겨를의 미들》
 황혜경
 문학과지성사
 2022.4.24.


  한밤에 마당에 서면 별자리를 읽습니다. 곧 봄빛이 퍼져 둘레가 따뜻하면 시골은 모를 내려고 못자리를 마련합니다. 하루하루 아이들하고 보금자리를 일구고, 우리 하루를 차분히 갈무리하면서 살림자리를 노래합니다. 어떤 사람은 벼슬자리를 얻으려고 용쓰는데, 즐겁게 일하면서 보람으로 삶을 빚는 일자리가 아니라면 부질없구나 싶어요. 《겨를의 미들》을 읽는 내내 말꼬리를 붙드는 올가미를 느꼈습니다. 오늘날 글자리란, “삶을 이루고 일구며 이으는 마음을 담은 말”을 글로 옮기는 길하고는 사뭇 동떨어지는구나 싶어요. 이름자리나 힘자리 같달까요. 지난날 중국을 섬기던 어리석은 사내들은 임금을 우러르면서 조아리는 한문을 끝없이 폈다면, 오늘날 문학은 삶자리에 발을 디디지 않으면서 꿈자리도 마음자리도 생각자리도 아닌, 서울자리에 스스로 갇히는구나 싶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글만 꿸 적에는 그릇이 아닌 굴레로 치닫습니다. 글 한 줄 없던 아스라이 먼 옛날에도, 모든 사람은 사랑으로 만나서 아이를 낳고 돌보면서 숱한 이야기자리를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헛바람을 걷어내어 노래자리라는 수수하면서 빛나는 길을 다시 찾아야 할 때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갑자기 왜 그래?라고 했니 갑자기는 아니야 어디서부터 얼마 동안 준비해야 갑자기가 아니지?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겨를의 미들/14쪽)

완숙 토마토가 과하게 익는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무르는 육肉의 소식들 단단한 이 밤이 잠재우려고 해 (Open/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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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의 미들》(황혜경, 문학과지성사, 2022)

기다림의 속도는 마지막에 빨라질까
→ 마지막에는 빨리 기다릴까
→ 마지막에는 얼른 기다릴까
→ 마지막에는 바로 기다릴까
9쪽

벌레의 이동을 흙과 바람이 돕고
→ 벌레길을 흙과 바람이 돕고
→ 벌레 나들이를 흙과 바람이 돕고
13쪽

어중간한 네가 그동안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야 겨를이 없는 건
→ 두루뭉술한 네가 그동안 생각하지 않아서 겨를이 없어
→ 어정쩡한 네가 그동안 생각하지 않아서 겨를이 없어
14쪽

애초부터 잘못된 지적도地籍圖 위에
→ 처음부터 잘못인 길짜임에
→ 워낙 잘못 담은 판짜임에
→ 이미 잘못 빚은 땅그림에
22쪽

나의 어린이 친구와 노인 친구와 먼저 사계절 친구가 되어야
→ 어린 동무와 늙은 동무와 먼저 줄곧 동무여야
→ 어린 벗과 늙은 벗과 먼저 늘 동무로 지내야
25쪽

넓어지려는 마음에는
→ 넓히려는 마음에는
30쪽

오프너를 찾는 사람 하려는 것들의 시작
→ 병따개를 찾는 사람 하려는 첫 몸짓
→ 따개를 찾는 사람 하려는 첫걸음
48쪽

완숙 토마토가 과하게 익는 것처럼 무차별적으로 무르는 육肉의 소식들 단단한 이 밤이 잠재우려고 해
→ 익은 땅감이 너무 익듯 답치기로 무르는 몸 이야기 단단한 이 밤에 잠재우려고 해
49쪽

측은한 언사가 곱다면 인사의 기원부터 읽기로 하자
→ 가엾은 말이 곱다면 고갯짓 뿌리부터 읽기로 하자
→ 딱한 말곁이 곱다면 절하는 밑동부터 읽기로 하자
82쪽

7일간의 잠을 휴식이라고 한다면
→ 이레를 자며 쉰다고 한다면
→ 이레를 자는데 쉰다고 한다면
110쪽

안녕, 초로初老를 향해가는 어린이들 몇 번씩 죽으며 전진하고
→ 반가워, 늙어가는 어린이들 몇 판씩 죽으며 나아가고
126쪽

수치羞恥의 진가를 가늠하라고 했다
→ 얼마나 창피한가 가늠하라고 했다
→ 부끄러운 값을 가늠하라고 했다
12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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