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2.14.
숨은책 911
《語文叢書 201 용비어천가》
허웅 글
형설출판사
1977.6.20.
나라는 사람들을 헤아리는 울타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헤아리는 울타리라면 싸울아비를 안 두고, 싸움붙이를 때려짓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퍼붓지 않아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같아요. 모든 나라는 나라지기를 헤아립니다. 나라를 이끄는 몫을 한다는 몇몇 사람 손끝에 따라서 틀과 얼개를 짭니다. 1445년에 지었다는 《용비어천가》입니다. 중국을 우러르면서 새나라 조선을 드높이려는 뜻을 담은 꾸러미입니다. 조선사람한테 읽힐 글이 아니었으니, 훈민정음을 쓰더라도 한자를 수두룩하게 집어넣습니다. 중국을 기리면서 사람들을 억누르는 말씀이었으니, 이 땅 들숲바다하고 동떨어진 줄거리입니다. 우리말 옛소리를 헤아리는 고마운 꾸러미이되, 글을 지은 뜻은 낡았어요. 왜 이렇게 낡은 글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지도 낱낱이 읽어내어야 말밭과 말길과 말틀을 슬기로우면서 새롭게 닦으리라 봅니다. 이제는 ‘龍飛御天歌’ 아닌 ‘들노래 하늘노래’를 부를 때예요.
그러나 우리말로 된 노래 125장의 분량은 그리 많은 것이 못되어서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순 우리말 낱말의 수효는 삼백 남짓한 정도이니 … 만일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설마저 우리말로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안타까운 느낌이 없지 않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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