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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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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불굿싸움 (2018.12.8.)
―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어릴 적부터 이 땅에서 마주하는 낯설고 새로운 모두가 궁금해서, 쉬잖고 둘레 어른이나 동무나 언니한테 물었습니다. “철은 뭐예요? 겨울은 왜 겨울이에요? 이 나무는 이름이 뭐예요? 나무에 앉아 노래하는 새는 이름이 뭐예요? 저 구름은 뭐라고 해요? 이 꽃은 먹어도 돼요? 왜 쉬운말을 안 쓰고 어렵게 말해요?” 같은.
곰곰이 돌아보면, 우리 어머니를 빼고 거의 모두라 할 사람들이 대꾸를 안 했고, 꿀밤을 먹였습니다. 박정희는 스러졌지만 전두환이 서슬퍼렇던 무렵이라, 나이든 사람은 나어린 사람을 쉽게 때린 지난날이에요. 이를테면 마흔 살짜리는 서른 살짜리를 때리고서 돈을 뺏습니다. 서른 살짜리는 스무 살짜리를 때리고서 돈을 뺏습니다. 스무 살짜리나 대학생은 고등학생을 때리고서 돈을 뺏는데, 고 3·고 2·고 1로 또 벌어지고, 중 3·중 2·중 1뿐 아니라, 국 6부터 국 2까지 때리고서 돈을 뺏는 얼개였어요. 국 1은 예닐곱 살 아이를 때리고서 돈을 뺏더군요.
이 바보스런 나라 한복판을 지켜보다가 열네 살 무렵부터 맞서기로 했습니다. 열세 살 봄부터 열네 살 봄까지 싸움솜씨를 익혔어요. 저는 으레 얻어맞고 돈을 빼앗긴 채 울면서 집에 들어왔는데, 우리 언니가 이 여린 동생을 보다 못해서 1988년 봄에 ‘특전무술 도장’에 억지로 집어넣었어요.
그때에 싸움솜씨를 익혔지만, 여태 몸싸움을 한 일은 없습니다. 몸싸움을 할 뜻으로 싸움솜씨를 익히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내 몸을 지키려고 익히지도 않았습니다. 중 2 때부터 고 3에 이르기까지, 또 싸움판(군대)을 거치는 동안에도, 나이로 동생이나 또래를 억누르는 얼뜬 바보 앞에 서서 “그딴 바보짓 그만해! 넌 스스로 안 창피하냐?” 하고 따졌습니다. 그때에 주먹무리는 갖은 막말로 “니가 뭔데?” 하고 으르렁댔고, 저는 똑같이 “넌 뭔데? 넌 뭐길래 쟤 돈을 뺏으려고 해?” 하고 가로막았어요.
겨울이 깊어가는 섣달에 순천으로 시외버스를 달립니다. 〈골목책방 서성이다〉에 들러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을 건넵니다. 오늘날 이 나라는 온통 싸움불굿입니다. 아이들은 배움불굿이고, 어른들은 서울불굿입니다. 서울을 즐겁게 떠나서 시골살림을 짓는 길로 거듭날 이웃은 어디 있을까요? 부릉부릉 쇳덩이는 그만 몰고서, 사뿐히 마당을 거닐고 풀꽃나무를 품는 이웃은 어디 있나요?
겨울이기에 봄을 그립니다. 새봄빛을 꽃노래로 누리는 하루이기를 바랍니다. 겹겹 품고 돌보는 겨울이니, 빛나는 그림으로 겨울을 녹여 봄이 오는 이야기를 펴는 꿈씨앗을 헤아립니다. 쇳덩이에서 내려야 비로소 둘레를 알고 책을 읽습니다.
ㅅㄴㄹ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편집부, 브로드컬리, 2018)
《내가 나눠줄게 함께하자》(일리아 그린/임제다 옮김, 책속물고기, 2013)
《통통공은 어디에 쓰는 거예요?》(필리포스 만딜라리스(글)·엘레니 트삼브라(그림)/정영수 옮김, 책속물고기, 2015)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이반 일리치/허택 옮김, 느린걸음, 201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