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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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책숲마실 (2020.9.5.)

― 전남 순천 〈도그책방〉



  새로 여민 책을 들고서 순천마실을 갑니다. 어릴 적부터 ‘책숲마실’을 해왔고, 이 삶을 고스란히 《책숲마실》이라는 이름으로 담았습니다. 책을 사고파는 곳도 숲이고, 책을 빌려서 읽는 데도 숲입니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마음에 안 드는 책이 있을 텐데, 뭇책이 어우러지기에 책숲입니다.


  사람은 숲을 품고서 살아가기에 사람답습니다. 숲을 품지 않고서 살아간다면 사람빛을 잊다가 잃습니다. 몸짓에 마음이 드러나고, 말씨에 마음이 나타납니다. 글줄에 마음이 퍼지고, 눈망울에 마음이 흘러요.


  책이 태어나려면 먼저 삶을 일굴 노릇입니다. 스스로 그려서 일구는 삶이 있기에, 이 삶을 누리는 하루를 마음에 담습니다. 삶을 마음에 담으니 날마다 천천히 가꾸고 돌봐요. 가만히 자라나는 마음에서 말이 피어납니다. 삶이 있기에 마음에서 말이 샘솟고, 삶이 없으면 마음에서 아무런 말이 안 나옵니다.


  고흥 시골집부터 순천책집을 오가는 길은 서울 오가는 길 못지않게 품과 돈이 듭니다. 시골에서 살며 이 대목을 또렷이 느낍니다. 서울에서야 인천이나 연천이나 남양주나 안산쯤 가볍게 오갈 만하고, 천안까지도 슥 다녀온다지요. 그러나 시골에서는 이웃 고장을 다녀오는 길이 드물고 비싸고 까다롭습니다.


  요즈막은 웬만한 사람들 누구나 부릉부릉 몰기에, 여느길(대중교통)이 어떤지 모르는 분이 수두룩하더군요. 걷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안 사귀거나 겉치레로 사귑니다. 두바퀴로 느긋느긋 오가지 않는 사람은 동무를 모르거나 겉훑기로 스칩니다.


  〈도그책방〉에 《책숲마실》을 한 자락 드립니다. 시골버스랑 시외버스에서 새로 쓴 노래꽃도 드립니다. 버스로 오래오래 돌고도는 길에 아이를 토닥이고 도시락을 챙겨 줍니다. 이러고서 생각을 추슬러 붓을 쥡니다. 움직이는 길에 책을 두어 자락 읽고, 글도 몇 자락 씁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책을 너덧 자락 읽고, 잠든 아이를 어깨에 기대라 하고 토닥이고는, 글을 몇 자락 천천히 여밉니다.


  모든 책은 처음 태어난 무렵에 어떤 삶이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눈으로 읽고서, 다시 다른 눈으로 풀어냅니다.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실마리가 말 한 마디이면서 책 하나입니다. 여러 갈래 삶을 여러 눈망울로 돌아보기에 여러 목소리를 나누면서 깊고 넓게 마음을 북돋울 만합니다.


  갓 태어난 책조차 며칠 지나면 “묵은 책”입니다. 새책도 하루 뒤에는 이미 ‘헌책’입니다. ‘헌’이 ‘허허·하늘’하고 맞닿은 줄 알아채는 분은 얼마나 있을는지요. ‘새책’이란 ‘사잇책’이고, ‘헌책’이란 ‘하늘책’입니다.


ㅅㄴㄹ


《꽃밥》(정현숙 글·김동성 그림, 논장, 2020)

《이 세상 최고의 딸기》(하야시 기린 글·소노 나오코 그림/고향옥 옮김, 길벗스쿨, 201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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