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하늘이란 하나인 마음 (2023.5.19.)

― 부산 〈비온후〉



  마을책집 〈카프카의 밤〉부터 〈비온후〉까지 걸어갑니다. 마을을 알려면 마을에 깃들어서 하루를 누리고, 해를 보내고, 철을 돌아보면 됩니다. 마을을 사랑하려면 보금자리에 나무를 심고서 새를 부르고 풀벌레랑 동무하면 됩니다. 마을을 가꾸려면 아이를 낳거나 품어서 아이한테 슬기로이 살림짓는 하루를 물려주면 돼요.


  빨리 읽거나 많이 읽을 책이 아닌, 그저 읽고 새기면서 익히고 나눌 적에 아름다운 책입니다. 빨리 걷거나 많이 다닐 길이 아닌, 그저 하늘을 보면서 걷고 나무를 헤아리며 노래하다가 풀빛으로 물들기에 즐거운 길입니다.


  하늘이 왜 ‘하늘’이란 이름인지 어릴 적부터 열일곱 살 무렵까지 어림조차 못 했습니다. 옛말을 처음 배우던 무렵 ‘한울’을 들었으나 이뿐이에요. ‘한’이나 ‘울’이 어떤 숨결을 품는지 짚거나 밝히거나 알려주는 어른을 못 봤습니다. 혼자 책집마실을 다니다가 해묵은 《뿌리깊은 나무》를 하나씩 장만해서 읽던 어느 날, 한창기 님이 남긴 글에 “우리나라 이름은 ‘한국’이 아닌 ‘한나라’여야 옳다”는 대목이 있더군요. 1980년에 이런 목소리를 낸 분이 있어 놀랐고, 우리는 막상 우리말부터 하나도 안 배우거나 엉터리로 흘려넘기는 줄 알아차렸습니다.


  배움불굿이 말썽이고 아이들을 잡아먹는다고 하지만, 막상 큰책집에서는 곁배움책이 ‘잘 팔립’니다. 마음을 가꾸거나 살림을 익히는 길하고는 동떨어진 우리나라 배움터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스스로 책집마실이나 책숲마실을 거의 못 하거나 안 합니다.


  사람은 살아남으려고 밥을 먹지 않아요. 삶을 짓고 살림을 펴면서 사랑을 나누려고 즐겁게 밥을 차려서 먹습니다. 솜씨나 재주를 키우려고 책을 읽는다면, 오히려 틀에 갇힙니다. 삶을 노래하고 살림을 가꾸고 사랑을 그리는 마음밭을 누리는 길에 이바지하는 책을 쓰고 읽을 적에 아름다워요.


  하나인 마음을 아우르는 하늘처럼, 하늘빛으로 물드는 말 한 마디를 씨앗으로 여미기에 눈길을 틔운다고 느낍니다. 작은책집이란 작은씨앗 같습니다. 아직 잘 안 팔리는 책도 작은씨앗을 닮습니다. 작은씨 한 톨이 깃들어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숲이 푸르게 우거집니다.


  빗방울 하나는 크기를 따질 수 없이 조그맣지요. 〈비온후〉에서 펴는 말빛수다 한 자리란, 두런두런 나누는 말 한 자락에 서로 주고받는 마음씨앗이라고 여겨요. ‘둘레’는 ‘두르다’와 ‘두루’가 바탕인 낱말이고, ‘두레’도 말밑이 같답니다. ‘둘’과 ‘두다’하고 나란한 결이고요. 둥글게 하나로 동무입니다.


ㅅㄴㄹ


《고양이 안전사고 예방 안내서》(네코넷코 편집부/전화영 옮김, 책공장더불어, 2023.5.13.)

《수원을 걷는 건, 화성을 걷는 것이다》(김남일, 난다, 2018.9.19.)

《재즈, 끝나지 않는 물음》(남예지, 갈마바람, 2022.4.25.)

《부산 문화 지리지》(김은영과 여덟 사람, 비온후, 2023.3.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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