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원수를 사랑하라 : 비나리집이라는 곳은 “밉놈을 사랑하라”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으면 넉넉하다. “밉놈을 사랑하라”를 가르치고 배울 수 없다면 비나리집이 아니다. 배움터도 매한가지이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밉놈을 사랑하라”를 제대로 보고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이라야 비로소 배움터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밉놈을 사랑하라”를 펴고 누리고 나누면서 익히는 자리가 바로 보금자리이다. 아주 쉽게 보기를 들자면,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어도 “밉놈을 사랑하라”를 떠올릴 일이다. 잘잘못을 가리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옳거나 그르다고 가르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리다고 따지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요사이는 “틀리지 않고 다르다”라는 말이 제법 퍼지는데, 이 말이 퍼지기는 해도 “미우니 사랑하라”가 빠진 채 ‘다름’만 앞세운다면, 오히려 더 싸우고 자꾸 다투고 끝없이 티격태격으로 치닫고 만다. “미우니 미워한다”를 붙잡을 적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우니 미워한다 = 미워할 일을 자꾸 마음에 그리면서 언제까지나 미워하고 다시 미워하는 굴레나 쳇바퀴”라고 여길 만하다. 밉짓을 하는 밉놈이 어느 자리에 있다고 여기기에, 요 밉놈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데에 늘 온마음을 쏟아버리고 만다. “미워서 미워한다”에는 아주 마땅히 ‘사랑’이 없는데, 사랑이 없는 쳇바퀴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가 아니라 “나를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바로 나부터 사랑할 테고, 바로 나부터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안 사랑할 수 없다. 누구를 콕 집어서 미워하는 사람이란, 바로 그 사람 스스로 안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뜻을 드러내는 셈이다. ‘스스로 사랑’인 사람은 “미워서 미워한다”를 안 하는데, ‘스스로 사랑’인 사람은 무엇을 하느냐 하면, “스스로 사랑하는 하루를 그리고 짓고 나누기”를 한다. 오늘 하루를 스스로 사랑하면서 그리고, 오늘 하루를 스스로 사랑으로 짓고, 오늘 하루를 스스로 사랑으로 펼 적에는, 오롯이 사랑이 흐른다. 사랑이기에 사랑이다. 미움이기에 미움이다. 사랑은 사랑씨앗을 낳고, 미움은 미움씨앗을 낳는다. 저놈이 저딴 짓을 했으니 밉다고 여기는 곳을 자꾸 쳐다보는 사이에, 우리 스스로 오늘 하루를 잊고 오늘 스스로 그려서 지을 사랑까지 잃는다. ‘저놈’이 아닌 ‘저이’는 스스로 눈물로 씻고 무릎을 꿇고서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노릇이다. 나는 나 스스로 꿈을 그리고 사랑을 지으면서 살림길을 숲빛으로 펼 노릇이다. “미운놈을 미워하기”에 기운을 쏟느라 “스스로 사랑씨앗을 심는 오늘 하루”하고 한참 멀리 가고야 만다. 모든 일에 드러나는 겉모습과 속빛을 읽으려 할 적에는, 이 일을 읽고 나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랑을 마음에 생각으로 심을 노릇이다. ‘멧숲말씀’은 참말로 멧숲에 깃든 넋으로 푸르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우리가 누구나 멧숲에 깃들어 보금자리를 일구고, 멧새와 숲짐승을 이웃으로 삼는다면, “미우니 사랑하라”가 스스로 어떻게 살고 살림하는 하루를 짓는 길인지 참하게 알아보리라. 2024.2.4.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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