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왜 봐? : 나는 눈이 안 나빴지만 아주 좋지는 않았다. 열세 살까지 왼오른 다 1.5까지 받되, 2.0이나 3.0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어린배움터에서 몸을 살핀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2.0을 넘는 눈’인 동무한테 물었다. “야, 넌 어떻게 2.0을 넘어설 수 있어?” “어떻게 하긴, 그냥 보면 보여.” “뭐? 말이 되니? 안 보이니까 묻잖아.” “야, 용쓴다고 해서 보이겠니? 보려고 마음을 먹고서 가만히 보면 다 보여.” “아, 넌 보인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말하는구나.” 동무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더 대꾸하지 않았다. 열네 살로 접어드니, 세 해 동안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잿더미(시멘트 교실)에 갇혀서 하얀불(형광등)에 시달렸다. 어린배움터에서는 불을 안 켰다. 겨울에는 꽁꽁 얼지만, 그래도 미닫이를 자주 열었다. 여름에는 모든 미닫이를 열고서 햇빛으로 지냈다. 햇빛 아닌 하얀불로 꽁꽁 가둔 푸른배움터를 다니던 열네 살에 오른눈이 0.1로 곤두박을 쳤다. 걷다가 비틀거리거나 부딪혔고, 왼눈은 1.5 그대로인데 오른눈만 온통 뿌옇게 보여서, 사람도 가리지 못 하고, 까만판(칠판)에 적는 글씨는 물에 번진 물감 같았다. 열일곱 살부터는 잿더미(시멘트 교실)에서 새벽 다섯 시 반부터 밤 열한 시까지 있었다. 이때에 용케 왼눈은 1.5 그대로이면서 오른눈은 0에 이르렀다. 그리고 스무 살에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는 자리에서 ‘1.0 + 0.1’이라는 엉터리를 받아서 싸움터에 끌려갔다. 군의관은 내 왼눈을 1.5 아닌 1.0으로 떨어뜨리려고 40분쯤 괴롭혔다. 오른눈이 0이고 왼눈이 1.5인 몸은 총을 못 쏜다. 우리나라 총은 다 오른눈잡이가 봐야 하는데, 난 총으로 겨누지 못 하기 때문이다. 열 살 무렵 동무가 들려준 말은 스무 살을 지나고 서른 살을 거치고 마흔 살을 가르고 쉰 살에 이르는 사이에 천천히 깨달았다. 잘 보려고 억지를 쓰면 오히려 안 보인다. 잘 하려고 어거지로 악을 쓰면 도리어 그르친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그냥 하면 되고, 그냥 보면 되고, 그냥 쓰면 되고, 그냥 사랑하면 된다. 언제나 오로지 스스로 마음 고요히 달래면서 둘레를 환하게 품는 사랑이라면, 왼오른눈이 5.0이건 0이건 훤하게 보게 마련이다. 마음을 달래지 않고, 마음을 틔우지 않고, 마음에 사랑씨앗을 심지 않은 채 억지나 용이나 악만 쓴다면, 아무리 눈이 좋더라도 속빛과 속내와 사랑을 못 본다. 하얀불(형광등)을 오래 켜는 곳에 있으면 누구나 눈을 버린다. 햇빛을 받는 사람은 날마다 눈이 새롭게 살아난다. 수수께끼 아닌 수수께끼이다. 뭘 보는가? 왜 보는가? 생각해야 한다. 집과 일터와 둘레가 온통 하얀불이라면 모조리 깨뜨려야 하지 않을까? 정 밤에 불을 켜야겠다면 햇볕불(백열전구)을 켤 노릇이다. 병원에 가면 병을 얻듯, 형광등을 켜면 눈을 갉는다. 우리나라는 학교에 가면 외려 바보가 되고, 책을 읽으면 되레 외곬눈으로 치닫더라. 뭘 읽는가? 왜 읽는가? 스스로 사랑을 보려 할 적에만 눈을 뜰 수 있다. 2024.1.4.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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