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감나무 2022.10.20.나무
올해에 너희 집 감나무 두 그루에 열매가 주렁주렁 맺었지. 놀랄 만하지 않아? 너희는 감나무한테 ‘거름’을 따로 안 주는 가장 나은 길을 의젓하게 갔어. 그저 너희 감나무가 튼튼히 서기를 바랐지. 무엇보다 너희 감나무가 선 땅을 오롯이 너희 것(소유지)으로 삼고서 첫 해를 났지. 자, 알아두렴. 나무도 풀도 벌나비도 개구리도 다 알아. 그동안 너희 뒤꼍이 너희 것(땅)으로 넘어오지 않아 이도 저도 아니었잖아. 이제 아주 너희 땅이 된 만큼 그곳을 누구도 건드리거나 넘볼 수 없어. 감나무는 이 삶결을 다 보고 느끼고 알기에 느긋하면서 넉넉히 자라지. 지붕 너머로 오른 가지를 너희가 날마다 바라볼 뿐 아니라 온갖 새가 날아앉아서 노래하고 벌레를 잡지. 나무는 나무 혼자서 자라지 않아. 사랑이란 숨결을 눈빛으로 베푸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새롭게 노래하는 새가 있어야 하고, 꽃가루받이를 해주면서 잎을 얻어먹는 풀벌레하고 애벌레가 있어야 해. 풀벌레나 여러 짐승 주검이 흙으로 돌아가려 할 적에 돕는 지렁이나 쥐며느리나 개미도 있어야 하지. 모두들 다르면서 하나인 마음으로 나무 곁에 있기에, 나무 한 그루는 우람하게 자라면서 잎·꽃·열매·씨앗을 내놓고서 푸른빛(피톤치드)을 뿜는단다. 언제나 하루를 사랑하면서 웃음·춤·노래·이야기로 가꾸기를 바라. 나무는 사랑눈으로 돌아보면 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