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파란바닥 (2023.4.25.)

― 인천 〈모갈1호〉



  우리 집 큰아이는 돌을 맞이하기 앞서 찰칵이를 손에 쥐었습니다. 한 손에는 붓을 쥐고, 다른 손에는 찰칵이를 쥐었어요. 어머니가 쥐는 뜨개바늘은 이따금 쥘 뿐, 아버지가 쥐는 찰칵이하고 붓을 으레 낚아챘습니다. 이러다가 열 살 즈음부터 찰칵이는 시큰둥하더니 거의 붓하고 부엌칼을 쥡니다. 작은아이는 찰칵이는 시큰둥한 채 뛰어놀며 자라다가 낫이랑 도끼랑 호미랑 삽을 으레 쥐더니, 어느 날부터 누나 곁에서 붓을 쥐고, 또 찰칵이를 자주 쥡니다. 작은아이도 가끔 부엌칼을 쥡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나무를 천천히 늘립니다. 나무는 서둘러 자라지 않으니 얼른 심어서 빨리 키워야 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주렁주렁 달아도 반갑고, 열매가 없이 지나가도 고맙습니다. 나무는 늘 우리 곁에 있기에 흐뭇합니다.


  한봄볕을 누리면서 인천 배다리 〈모갈1호〉로 걸어갑니다. 해는 언제나 고루 비춥니다. 어느 곳만 더 비추지 않아요. 어느 곳을 덜 비추지 않습니다. 바람도 어느 곳에나 찾아갑니다. 바람이 안 찾아가는 데는 없어요.


  우리는 한겨레라고 일컫습니다. 하늘겨레이자 해겨레이고, 하나인 겨레라는 뜻인데, 너랑 나를 가르려는 하나가 아닌, 너도 나도 나란하다는 뜻인 하나입니다. 이 ‘한’을 넣는 한봄이고 한가을입니다. 예부터 ‘한길’은 사람을 비롯해 뭇숨결이 두루 드나드는 자리예요. 부릉부릉 내달리기 좋은 데가 한길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한길(큰길)에서 사람이 밀려나고, 나무도 들꽃도 풀벌레도 나비도 쫓겨납니다. 인천 벼슬아치는 이 배다리를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차곡차곡 걸어온 길은, 새롭게 걸어가는 길하고 만나는, 반짝이는 하루로 누립니다. 차근차근 걸어가는 길은, 새삼스레 마주하는 이웃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함께 노래하는 하루로 피어납니다.


  느긋이 거닐 수 있는 곳에서 책을 읽습니다. 느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림을 짓습니다. 넉넉히 나눌 수 있는 곳에서 마을이 태어나고 자리잡습니다. 나라도, 고을도, 숲도, 배움터도, 책집도 돈으로 쌓거나 세우지 않아요. 언제나 마음으로 빚고 노느는 어울림마당입니다.


  인천으로 바깥일을 보러 가는 아버지를 배웅하는 우리 집 아이들은 “모든 사람이 파란별을 그리면 아름다울 텐데요.” 하고 얘기합니다. 파란하늘빛을 품은 파란별을 그린다면, 이 별이 살아나겠지요. 파란별이란 하늘빛을 품은 별입니다. 낮하늘도 밤하늘도 담는 별입니다. 파랗기에 바람이고, 새파란 바다입니다. 바탕이란, 하늘빛으로 다다르려는 밑바닥이요, 발바닥이고, 손바닥입니다.


ㅅㄴㄹ


《물질과 생명》(앨런 와츠/김형찬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1.7.20.)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로얼드 호프만/이덕환 옮김, 까치, 1996.12.1.첫/2005.12.10.4벌)

《중국혁명의 해부》(동경대학 출판부/윤석인 옮김, 이삭, 1984.5.10.)

《학교는 죽었다》(에버레트 라이머/김석원 옮김, 한마당, 1979.5.5.)

《이별없는 世代》(볼프강 보르헤르트/김주연 옮김, 민음사, 1975.4.30.첫/1990.4.15.고침2벌) 

《문학과 이데올로기》(임헌영, 실천문학사, 1988.12.25.)

《농업경제학개론》(梅川勉 외/신대섭 옮김, 청사, 1983.7.10.)

《한권의책 그리고 말도 하지 않았다》(하인리히 뵐/고위공 옮김, 학원사, 1994.3.10.)

《기독교의 본질》(루트비히 포이어바흐/박순경 옮김, 종로서적, 1982.4.20.첫/1982.6.30.2벌)

《신화와 원형》(신동욱 외, 고려원, 1992.1.20.)

《흔들리는 시대의 언어들》(김열규, 홍성사,1985.10.25.첫/1986.1.30.2벌)

《美國의 對外政策과 第三世界》(R.J.바네트/홍성후 옮김, 형성사, 1981.9.30.)

《한국의 토종기행》(홍석하, 사계절, 1994.7.15.)

《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 창작과비평사, 1982.6.5.)

 - 결혼 2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더욱 건강하시기를…… 85.4.16. 호영

《개정판 犬神 10》(호카조노 마사야/원성민 옮김, 대원씨아이, 2020.2.28.)

《ONE PIECE 92》(오다 에이이치로/길명 옮김, 대원씨아이, 2019.5.31.)

《란마 1/2 애장판 5》(타카하시 루미코/이소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1.30.)

《문맹》(아고타 크리스토프/백수린 옮김, 한겨레출판, 2018.5.9.)

《博英文庫 214 朝鮮佛敎通史 上》(이능화/윤재영 옮김, 박영사, 1980.6.30.)

《博英文庫 215 朝鮮佛敎通史 中》(이능화/윤재영 옮김, 박영사, 1980.6.30.)

《博英文庫 216 朝鮮佛敎通史 下》(이능화/윤재영 옮김, 박영사, 1980.6.30.)

《思想文庫 13 프랭클린 自敍傳》(B.프랭클린/신태환 옮김, 사상계사, 1962.8.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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