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오래집 (2023.4.25.)

― 인천 〈마쉬〉



  22일에 서울에서 일을 보고서 23일 낮에 고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틀밤을 쉬고서 25일에 인천으로 건너옵니다. 시외버스에서 살짝 눈을 붙이기는 하지만 온몸이 찌뿌둥합니다. 이럴 적에는 한 손에 붓을 쥐고서 노래를 씁니다. 오늘 만날 이웃님을 그리면, 문득 낱말 하나가 떠오르고, 이 낱말을 징검돌 삼아 열여섯 줄로 이야기를 여밉니다.


  서울에서 버스를 내리고서 전철을 갈아탑니다. 엉덩이를 쉬려고 내내 서서 인천으로 옵니다. 도원나루에서 내려 걷습니다. 언덕마을이 모래언덕으로 바뀌었지만 천천히 풀이 돋는군요. 밀려난 마을에 풀씨가 싹트면서 생채기를 달랩니다. 차라리 잿더미 아닌 ‘언덕쉼터’로 두면 이 고을이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배다리를 오가는 길에 들여다볼 적마다 으레 닫힌 〈마쉬〉인데, 오늘은 활짝 열렸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갑니다. 〈마쉬〉는 오랜 술빚집(양조장) 한켠에 깃들었어요. 2010년에 인천을 떠난 뒤로 술빚집 할머니를 못 뵈었는데 잘 계시려나 궁금합니다. 배다리 한복판에 있는 술빚집은 안쪽도 곱고, 기와지붕도, 나무닫이도 정갈합니다. 나무닫이 한쪽을 보면 ‘수도·정화조·전기’가 처음 들어오며 붙인 쇠딱지가 고스란합니다. 이 술빚집은 이대로 살림숲(박물관)입니다.


  오래집을 살리는 길은 여럿입니다. 그저 그대로 둘 수 있고, 마을책집이 들어와서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징검다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잎물을 머금는 가게가 부쩍 늘어나는데, 그냥 잎물집(카페)보다는 책집으로 펴는 한켠에서 잎물을 머금는 얼거리가 마을을 북돋우는 새길로 이바지하리라 봅니다.


  나무는 ‘사람이 가지치기를 했을 때’에만 줄기가 둘로 갈립니다. 나무는 ‘외줄기’로 곧게 오르면서 ‘옆으로 숱한 가지를 줄줄이 뻗’습니다. 풀도 같아요. 풀줄기도 ‘외줄기’가 바탕이고, 옆으로 줄줄이 뻗어요. ‘사람이 손댄 나무’가 아닌 ‘숲에서 스스로 자라는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림으로 담는 어른은 오늘날 얼마나 될까요? ‘스스럼없이 하늘바라기로 자라는 숲나무’를 늘 마주하는 어른이는 이제 몇이나 있을까요?


  아이도 어른도 마을도 골목도 책집도 매한가지입니다. 태어나면서 품은 숨결을 고이 간직하는 길이 살림길이요 삶길이며 사랑길인 숲길입니다. 꾸미는 글은 덧없어요. 수수하게 삶을 드러내기에 살림글이면서 사랑글이고 숲글입니다.


  오래넋을 떠올려요. ‘기억·추억’이 아닌 ‘그림’을 담아요. 이러면서 ‘생각’을 하고, 되새기고, 곱새기고, 돌아보고, 둘러본다면, 바로 이곳이 푸릅니다.


ㅅㄴㄹ


《무지갯빛 세상》(토네 사토에/엄혜숙 옮김, 봄봄, 2022.7.1.)

《네드는 참 운이 좋아!》(레미 찰립/이덕남 옮김, 비비아이들, 2006.5.25.)

《그레이엄의 빵 심부름》(장 바티스트 드루오/이화연 옮김, 옐로스톤, 2021.2.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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