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코머거리 2023.12.15.쇠.
코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가 어려울 적에는 냄새를 맡을 겨를이 없어. 코숨을 누릴 수 있을 때부터 냄새를 받아들이고 보고 느껴서 안단다. 귀가 아프다면 새노래·벌레노래·개구리노래·바람노래를 누릴 겨를이 없어. 눈이 아프다면 빛·빛깔·빛살을 즐길 겨를이 없고. 그런데 코나 귀나 눈이 아플 적에는 다른 곳을 느낀단다. 코머거리이기에 코앓이가 없는 사람은 못 겪고 못 보는 곳을 바라보고 알아본단다. 귀머거리이기에 귀앓이가 없는 사람은 못 겪고 못 보는 곳을 마주하고 맞아들인단다. 장님이기에 장님 아닌 사람은 못 겪고 못 보는 곳을 받아들이고 알아가지. 몸으로 바람을 담아야 살아서 움직여. 마음으로 생각을 심어야 사랑하면서 살아가. 그런데 코가 먹느라 바람길이 자꾸 막히거나 걸린다면 몸이 어떨까? 아프거나 앓겠지. 아프거나 앓으면 다른 사람들처럼 움직이거나 살 수 없어.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알 길이 없는 너머를 보고서 배운단다. 장님을 그려 보겠니? 너희는 ‘눈’으로만 본다고 여기기 일쑤인데, 손가락도 머리카락도 둘레를 봐. 살갗도 다리도 둘레를 봐. 무엇보다도 ‘넋’이라는 빛은 ‘눈을 감아야’ 본단다. 너희는 안 아픈 코로 숨을 실컷 마실는지 모르지만, 막상 ‘바람’이 어떻게 숨을 이루고 몸을 움직이는지 통 못 알아채거나 모를 수 있어. 너희는 장님이 아니라서 눈으로 그림도 빛깔도 글도 잔뜩 볼는지 모르지만, 껍데기로 감싹 속내가 어떤 빛이고 마음인지 영 못 알아보거나 잘못 볼 수 있어. 책에 적힌 글씨를 어떻게 읽니? 소리로 퍼지는 말을 어떻게 듣니? 겉훑기를 끝내렴. 속보기를 하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