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43. 수수께끼로 배우는 삶말



  수수께끼란 무엇일까요? 한자말로 비겨 본다면 ‘비밀·정체불명·불가사의·불가해·원인불명·비결·미궁·오리무중·미로·난맥·묘하다·신묘·신비·신기·의문·미해결·미제·형이상학·기이·기묘·기상천회·오묘·괴상·괴이·비정상’이기도 합니다. 영어로 비겨 본다면 ‘퀴즈·미스터리·베일·퍼즐’이기도 합니다. 가볍게 한두 가지 뜻풀이로 ‘수수께끼’를 바라볼 수 있으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말 그대로 수수께끼가 되어 도무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수렁이나 바다밑으로 풍덩 빠져든다고 할 만해요.


얼핏 단단해 보여. 아마 딱딱해 보이지. 어쩌면 튼튼해 보이고. 그런데 무척 부드럽지. 모래를 품었지. 흙을 품었어. 뜨거운 불길을 품었고. 비바람 듬뿍 담았어. 눈을 감고 돌아다녀. 조용히 온누리를 돌아. 묵직한 몸을 두고 다녀. 그저 마음으로 날지. 너희는 날 다리로도 삼고. 디딤자리로도 삼고. 집으로도 삼지. 무덤으로도 삼더라. (수수께끼 001)


  2020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라는 동시책이자 수수께끼책이자 낱말책이자 이야기책이자 노래책(시집)을 내놓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거나 곁에 두거나 쉽게 말하는 온갖 살림을 새롭게 바라보는 이야기를 열여섯 줄로 164꼭지를 갈무리했어요. 첫머리 ‘수수께끼 001’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린 분이 있을까요? 다음 ‘수수께끼 079’은 얼마나 빠르게 알아내실는지 궁금합니다.


까마귀도 하고 까치도 하지. 지렁이도 하고 개미도 해. 범나비도 하고 제비나비도 하고. 고추잠자리도 하고 모기도 하네. 구름은 비를 뿌리며 하고. 냇물은 흐르면서 해. 바위는 가만히 앉아서 하고. 풀무치는 날아오르면서 해. 입으로 한다. 손으로 한다. 눈으로 한다. 마음으로 한다. 생각이 노래되어 솟는다. 마음이 또랑또랑 들린다. 꿈을 이렇게 펴고 나누네. 씨앗이 되고 이름이 돼. (수수께끼 079)


  제 나름대로 수수께끼를 새롭게 “1. 어떤 뜻이거나 이름인가를 스스로 알도록 말·그림·몸짓으로 들려주거나 빗대는 이야기·놀이 2. 알기·풀기·찾기·헤아리기가 어렵거나 어수선하거나 오래 걸리는 것·일·이야기·마음·생각·뜻 3. 앞으로 알거나 풀거나 찾거나 헤아리거나 해내야 하는, 아직 모르거나 낯선 것·일·이야기·마음·생각·뜻”이라고 풀이해 봅니다.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어느 나라나 겨레이든 어른이나 어버이는 아이한테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한 줄짜리로 가볍게 낼 적이 있다면, 열여섯 줄뿐 아니라 서른 줄이나 쉰 줄에 걸쳐 길게 낼 때가 있어요. “밤에 일하고 낮에 쉬는데, 뭐지?” 하는 단출한 수수께끼가 있다면, “여러해를 산다고 하는데, 아주 오래 살 수 있지. 따로 몇 해를 사는가, 센 적은 없어.”처럼 알쏭달쏭하게 첫머리를 여는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다음 ‘수수께끼 108’도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나무그늘 같아서 아늑. 풀밭 닮아서 포근. 구름송이처럼 맑고 시원. 처마밑같이 비노래 듣고. 갈참 잣 솔 대 느티. 갖가지 나무를 옮겼나. 머위 달래 맹개 마삭줄. 갖은 들풀을 심었나. 살살 펴면서 가슴 펴는 길. 슬슬 넘기며 어깨동무 길. 솔솔 새기며 반짝이는 길. 작은 꾸러미가 이끄는구나. 이야기로 숲을 이룬 집. 노래로 바다가 되는 집. 살림하는 사랑이 영그는 집. 책숲 책집 책마루 책마당. (수수께끼 108)


  생각이 얕으면 수수께끼를 내지 못합니다. 생각을 깊거나 넓게 다스리지 않으면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합니다. 모든 수수께끼는 삶자리에서 태어납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어린이라는 길을 지나 바야흐로 어른이라는 자리에 들어설 숨결을 사랑으로 마주하면서, 이 아이 스스로 삶을 깊고 넓게 헤아리면서 가슴에 품기를 바라기에 수수께끼를 지어서 내요.


  곰곰이 보면, 이 수수께끼란 다른 한자말로 ‘화두’라 할 만합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 나라 옛사람은 아주 쉽고 수수하며 투박한 몇 낱말을 엮어서 수수께끼를 냈는데, 이 수수께끼란 ‘삶길’이나 ‘삶말’이나 ‘삶다짐’이 되었어요.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제대로 읽지 못하던 깜깜한 대목을 스스로 수수께끼를 푸는 동안 어느새 실마리도 실타래도 솔솔 풀면서 새롭게 매듭을 짓거나 옷을 지을 줄 아는 셈입니다. 다음 ‘수수께끼 143’도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다 아는 사람은 아니네. 기꺼이 새로 배우는 사람이지. 먼저 나설 줄 알고. 의젓하면서 상냥한 마음이야. 하루하루 지어서 겪는 동안. 새삼스레 느끼고 익힌 사랑을. 참으로 부드럽고 환히 엮어. 도란도란 이야기꽃으로 들려주네. 맨손으로 짓는 길을 보여준다. 빈몸으로 이루는 삶을 알려준다. 누구나 다르면서 같은 줄 알고. 저마다 고우면서 밝은 빛을 봐. 함께 가꾼 모두 물려주고. 새로 피는 꽃을 반겨. 바람결 흙내 풀숨을 읽고. 나무숲 철노래 오늘을 잇지. (수수께끼 143)


  오늘 이곳에서 어른이란 몸을 입은 이웃님은 둘레 다른 어른 곁에서 얼마나 슬기롭게 수수께끼를 내면서 어깨동무를 하는지요? 어른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웃님은 이녁 아이나 마을 푸름이 곁에서 얼마나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참하게 수수께끼를 넌지시 건네는 마음빛을 밝히시는지요?


  수수께끼 한 토막이나 꾸러미란, 낱말 하나를 알아맞히는 놀이가 되면서, 살림을 새삼스레 바라보는 길잡이가 됩니다. 말 한 마디가 태어나고 자란 결을 살피는 눈썰미를 키우면서, 어린이·푸름이가 앞으로 스스로 새말을 빚으면서 살림살이를 추스르는 씩씩하고 다부진 어른으로 크는 디딤돌이 되어요.


  수수께끼란 틀에 매이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똑같은 한 가지를 놓고서 다 다르게 마음으로 읽어내어 줄거리를 엮습니다. 자, 생각해 봐요. ‘바다’나 ‘바람’을 놓고서 열여섯 줄로 수수께끼를 지어 볼까요? ‘옷’이나 ‘눈’을 놓고서 열여섯 줄짜리 수수께끼를 엮어 볼까요?


  말을 말답게 다스리는 첫자리를 든든하게 가눌 줄 안다면, 글꽃(문학)이며 밝꽃(과학)이며 벼슬(정치·행정)이며 생각(철학)이며 살림(경제)이며 빛살(예술)이며 일감(산업)이며 배움(교육)이며, 모두 즐거우면서 아름답게 여밀 만하지 싶습니다. 말부터 말답게 건사하지 못한 채 온갖 일을 붙잡으려 한다면, 그만 너무 어렵거나 여느 사람들하고 동떨어진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기울기 쉽다고 느낍니다.


 잣나물 잣나무


  저는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란 책을 써냈는데요, 이 나라 푸나무를 살피는 어느 이웃님은 《한국식물생태보감》이란 책을 써냈어요. 《한국식물생태보감》에서 ‘잣나물’ 꼭지를 읽으니, ‘잣나무’처럼 나물에서도 ‘잣’이란 이름이 붙은 풀이 있기 마련이라고, ‘잣나무·잣나물’에서 ‘잣’은 ‘젖’하고 맞물린다고 밝힙니다. 옳거니, 나무잣이건 풀잣(쇠별꽃)이건 그렇게 기름지면서 맛난 까닭이 이름에 숨었군요.


  우리는 가을이면 논밭에서며 멧골에서며 ‘갈무리’나 ‘갈망’을 해요. 나락이며 열매이며 짚이며 갈무리하는데요, ‘간수하다·건사하다’하고 잇닿는 이 낱말 ‘갈무리·갈망’이란 으레 ‘가을(갈)’에 합니다. ‘갈잎·갈바람’에 깃드는 이 ‘갈’을 비롯해서 ‘간(간수·간직), 건(건사), 갖(갖추다·가지다)’으로 가지를 치는 숱한 낱말하고 얽힌 수수께끼는 실타래처럼 얽히면서도 재미나게 풀어낼 만해요. 가을이 ‘가을·갈’인 까닭이 ‘갈무리·갈망’에 깃들었달까요.


  누구보다 이 나라 어린이하고 푸름이부터 말을 말다우면서 슬기롭게 즐겁게 다루면서 누리기를 바라기에 “우리말 수수께끼”를 “우리말 동시”이자 “수수께끼 동시”라는 얼개로 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이 곁에서 어른도, 푸름이 곁에서 어버이도, 함께 수수께끼를 풀면서 우리 삶길이 앞으로 나아갈 새그림을 조곤조곤 가다듬어 보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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