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시골길 2023.11.9.나무.



사람이 넘치느라 나무도 풀꽃도 밀어낸 서울길이야. 사람이 조용히 스미면서 나무랑 풀꽃을 품으려는 시골길이야. 밀리고 밀면서 서로 차지해서 올라가려고 노리는 서울길이야. 둘레를 보고 하늘을 헤아리고 이 땅을 디디려는 시골길이야. 어린이가 혼자 다니기에는 사납고 무서운 서울길이야. 어린이가 놀고 노래하며 다닐 시골길이야. 너희가 어른이라면 모든 길을 풀꽃길이나 숲길로 가꾸겠지. 서울도 시골도 걸어서 오가는 마음에 푸르게 생각이 자라도록 북돋우는 길로 돌보겠지. 너희가 어른이 아니라면 시골길도 메마르게 망가뜨릴 테고, 서울길은 더더욱 시끄러울 테지. 둘레를 봐. 길에 무엇이 있니? 길가는 어떠하니? 어린이가 마음껏 오가거나 다닐 수 있는 길이라면, 숲짐승도 새도 풀벌레도 어울릴 수 있어. 어린이가 쇳덩이(자동차) 앞이나 둘레에서 막히거나 멈춰서야 한다면, 이런 곳에는 숲짐승도 새도 풀벌레도 도무지 오가거나 어울리기 어렵단다. 사람들이 세우는 마을에서조차 ‘사람이 먼저’가 아닐 뿐 아니라, 어린이는 뒷전이라면,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어른도 스스로 마음이 갇히고 몸이 얽매이겠지. 해를 느끼고 바람을 마시고, 빗소리나 눈송이를 맞이하고, 풀꽃내음을 맡고, 나무빛을 누릴 수 있기에 비로소 ‘길’이야. 이곳하고 저곳을 잇기만 하는 ‘길’이지 않단다. 이곳하고 저곳이 푸르고 밝게 피어나도록 잇기에 비로소 ‘길’이란다. 그래서 ‘법·규칙·제도·정책·대안’이라 일컫는 ‘길’이 그야말로 길다우려면, 시골과 어린이와 들숲과 바다와 하늘을 고루 헤아릴 줄 알아야겠지. 걷다가 쉬고, 걷다가 놀고, 걷다가 달릴 수 있는 데가 ‘길’이란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