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길턱 (2023.5.30.)

― 인천 〈문학소매점〉



  사람들이 우리말을 곱거나 바르게 쓰기를 바랄 수 있지만, 이보다는 스스로 마음이 있는 사람들부터 늘 곱거나 바르게 생각을 빛내는 우리말을 살펴서 쓰면 된다고 느낍니다. 들불처럼 일어나서 말빛을 살려도 안 나쁠 테지만, 하루아침에 바꾼다거나 밀물이나 회오리처럼 바꾸려 하다가는, 느림벗한테는 너무 벅찹니다.


  둘레를 보면 ‘마음이 있는’ 사람이 꽤 적거나 드물어요. 다들 ‘몸에 익은 대로’ 말을 하더군요. ‘익숙하다고 여기는 말씨’라면 틀렸건 어긋났건 엉성하건 얄궂건 못 털거나 안 씻더군요. ‘말이 씨가 된다’나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같은 옛말이 무슨 속뜻인지 하나도 모르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모름지기 모든 일은 천천히 할 노릇입니다. 글도 천천히 쓰고, 책도 천천히 읽을 노릇입니다. 아무 책이나 읽기보다는 아름다운 책을 읽을 일입니다. 미움이란 불씨를 지피는 글이 아닌,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길을 밝히는 글을 챙겨서 곁에 둘 적에 우리 보금자리부터 깨어나고, 온누리가 꽃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안 쓰면 어설프지만, 쓰면 즐겁습니다. 아름말을 혀에 얹는 사람은 아름말하고 먼 줄거리를 알아채고, 어린이하고 함께 읽으면서 물려줄 글을 알아봅니다.


  엊그제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고흥에서 살짝 등허리를 펴다가 이내 인천으로 건너옵니다. 시외버스에서 끙끙했지만, 전철을 타고 덜컹덜컹 건너오면서, 어느새 한켠은 중국빛이고 맞은켠은 일본빛으로 바뀌는 인천 중구 골목을 낯설게 느끼면서 〈문학소매점〉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곳곳이 중국거리에 일본거리로 바뀌는데, 정작 ‘한겨레거리’는 찾아볼 길이 없다시피 합니다. ‘개항문화’라는 허울을 내세워 껍데기만 중국스럽거나 일본스럽게 덧씌우는데, 다 돈 때문입니다.


  돈은 안 나쁘되, 돈바라기로 뒹구니까 ‘나다움’을 등져요. ‘우리다움’하고 등돌리니까, 마음을 담는 말을 사랑으로 아름답게 다스리는 길을 잊은 채 아무 말이나 하거나 쓰거나 읽으며 쳇바퀴에 갇힙니다.


  예전에는 누가 “괜찮으냐?”고 누가 묻는다면, ‘공연찮다(괜찮다)’라는 일본스런 말은 ‘까닭이 없다’는 뜻이라고 토를 달면서 “글쎄요?” 하고 대꾸했지만, 요새는 “다친 데가 낫기까지 두어 달 걸릴 듯하네요.”라든지 “이 바보스런 나라꼴을 보면 일찌감치 시골로 터전을 옮겨 살기를 잘 했네요.” 하고 얘기합니다.


  길턱이 자꾸 생깁니다. 걸어다니는 사람은 길바닥에 선 쇳덩이(자동차) 탓에 버거운데, 쇳덩이는 안 줄어듭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서로 느긋이 삶을 지을 마을은 다 어디 갔을까요. 글턱이 높고, 이름턱에 돈턱에 갖은 턱이 곳곳에 생깁니다.


ㅅㄴㄹ


《그때 치마가 빛났다》(안미선, 오월의봄, 2022.10.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페니 플래그/김후자 옮김, 민음사, 2011.1.1.첫/2020.9.15.)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민나리·김주연·최훈진, 오월의봄, 2023.5.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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