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버스에서 : 서울·큰고장이건 시골이건, 버스를 타면 다들 라디오나 노래를 틀어놓는데, 어린이 눈높이를 헤아리는 버스일꾼을 여태 못 보았다. 어머니 손을 꼭 잡고서 버스를 타던 1977년 두어 살 무렵에도, 혼자서 처음 버스를 타던 1982년에도, 푸른꽃날을 지나가던 1992년에도,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던 1995년에도, 싸움터(군대)에 들어가서 타던 1995∼97년 강원도 양구 시골버스에서도,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며 살던 충북 충주·음성에서 타던 버스에서도, 살림을 시골로 옮겨 전남 고흥에서 살아가는 2011년부터 타는 고흥 시골버스에서도, 이웃 순천이나 여수 시내버스에서도, 다들 정치 수다 라디오나 뽕짝이나 대중가요로 시끄럽다. 어린이노래를 튼 버스일꾼은 아직 못 보았다. 곰곰이 보면 교육방송조차 어린이노래를 잘 안 틀고, 어린이가 들을 글(동요 및 동시)을 읽어 주지 않는다. 빛(전파)을 다 어디에다가 버리는 노릇일까? 어린이가 삶눈을 북돋우고, 푸름이가 철눈을 익히도록 이끄는, 어른이 어른스럽게 생각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라디오도 노래도 아예 없다고 여길 만한 버스이다. 때리고 맞고 아프고 죽고 다치고 우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넘치는 연속극·영화이다. 스스로 보금자리를 사랑으로 가꾸고 돌보는 이야기를 다루는 연속극·영화는 있기나 할까? 〈효자동 이발사〉나 〈집으로〉 같은 이야기는 가물에 콩 나듯 어쩌다가 나오다가 잊힌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늘 흐르고, 늘 퍼지고, 늘 태어나야 이 나라가 아름답지 않을까? 미워하고 싫어하고 꺼리고 등돌리고 죽이고 죽는 줄거리로 짜는 글과 그림으로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줄까? 〈피아니스트의 전설〉이나 〈스윙 걸즈〉나 〈말괄량이 삐삐〉를 찍을 만한 마음이 깨어날 때에 비로소 어깨동무를 하겠지. 여느길(대중교통)을 타는 사람들이 웃음꽃과 눈물꽃으로 가슴을 적실 만한 이야기가 흐를 수 있어야, 이 나라에 꿈이 있다고 하리라. 2023.11.3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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